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페이스북에서 보니 모 사이트에서 '포수 리드' 논란이 한창인가 봅니다. 사실 저는 포수 리드 같은 건 없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포수 제1 덕목은 '공을 잘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을 잘 받는다는 건 뭘까요? 그러니까 포수 리드가 무엇인지 그 개념이 불명확하다는 겁니다. 국내에서 드물게 '포수 리드 무용론'을 펼치는 이만수 감독 얘기부터 들어보겠습니다.

이 감독은 "피칭은 투수가 하는 것으로 포수가 백 번 몸 쪽 공을 요구해도 제구가 되지 않으면 그만"이라며 "포수의 역할은 투수 리드보다 경기 운영에 더 치중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즉 공 한 개마다의 볼 배합보다 전체의 흐름을 이끌어야 한다는 관점이다. 예를 들어 "타자와 승부할 것인가. 아니면 다음 타자를 잡을 것인가. 또는 투수의 투구 템포를 어떻게 조절할까와 결부된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도 포수를 그저 '공 받는 사람'으로만 보지는 않는 겁니다. 다만 볼 배합보다 큰 흐름을 보라는 주장을 하는 셈이죠. 이 감독이 이 지론을 바탕으로 선택한 주전 포수는 LG에서 뛰던 조인성입니다. 조인성은 이 지론을 얼마나 뒷받침하고 있을까요?

지난해 조인성이 공을 받는 상황에서 상대 팀 타자들은 SK 투수들을 상대로 2667타석(623⅔)에서 .259/.338/.380을 때렸습니다. 정상호가 앉아 있던 1861타석(444⅓이닝)에서는 .256/.332/.369였습니다. OPS(출루율+장타력)로 따지면 조인성(.718)이 정상호(.702)보다 .018 높기는 하지만 사실상 똑같은 성적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건 2010~2012 세 시즌 동안 SK 투수들 투구 내용을 살펴 보면 정상호와 박경완이 놀랄 만큼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조인성은 SK에서 뛴 지난해 기록만 들어 있습니다. ('스트라이크'는 심판이 스트라이크라고 선언한 비율)

 팀  포수  투구수  스트라이크  헛스윙  파울  타격  볼
 SK  박경완  1만9071개  18.1%  9.4%  16.4%  16.7%  39.5%
 SK  정상호  2만4724개  18.1%  9.4%  16.3%  16.8%  39.4%
 SK  조인성  1만257개  17.4%  7.8%  16.8%  19.4%  38.6%

박경완, 정상호만 보면 포수보다는 투수가 투구 결과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포수가 누구냐에 상관없이 투수들이 일정한 기록을 보이고 있는 걸 테니까요. 그런데 조인성은 다릅니다. 박경완하고 정상호는 타자들이 방망이를 휘둘렀을 때 허공을 가르게 하는 타입. 반면 조인성은 타구를 일단 페어 지역으로 보내는 유형입니다.

그럼 조인성을 떠나 보낸 LG는 어떨까요? 2010~2011년 조인성이 공을 받았을 때하고 지난해 LG 투수들 투구 내용을 보면 역시나 재미있는 결과가 나옵니다. 박경완-정상호 수준은 아니더라도 그리 큰 차이가 없는 겁니다.

 팀  포수  투구수  스트라이크  헛스윙  파울  타격  볼
 LG  조인성  3만3799개  18.2%  7.2%  16.2%  18.7%  39.7%
 LG  2012  1만9779개  18.0%  7.6%  16.1%  20.0%  38.2%

전체적으로 투구 내용이 비슷한 가운데 타격은 늘어났지만 볼은 줄었습니다. 페어 지역에 들어온 타구를 야수들이 아웃으로 처리하는 비율(DER)도 조인성 시절과 지난해 모두 68.7%로 변함이 없습니다. 포수가 바뀌었다고 특별히 강한 타구를 맞지는 않았다는 거죠.

지금까지 결과를 보면 포수가 투수에게 영향을 준다기보다 조인성이 자기한테 공을 던지는 투수들이 바뀐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게 옳은 해석일 겁니다. 그러니까 이 감독의 '포수 리드 무용론'이 설득력 있는 논리라는 뜻입니다. 포수는 볼 배합보다 '전체 흐름'입니다.


그럼 박경완도 지난해 정상호, 조인성하고 비슷한 성적을 냈을까요? 247타석(57⅓이닝)밖에 안 되지만 지난해 박경완이 포수일 때 상대 타자들은 .248/.322/.322에 그쳤습니다. OPS로는 .654죠. 포수 평균 자책도 박경완(2.98)이 조인성(4.11)이나 정상호(3.63)보다 좋습니다. 물론 같은 팀 포수라고 해도 서로 다른 투수 공을 받은 거니까 이 기록만으로 박경완이 둘보다 나은 포수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박경완이 주전 포수였을 때는 어땠을까요? 2010년 SK 투수들은 .243/.331/.365를 허용했습니다. 조정OPS(OPS+)로 환산하면 92, 즉 리그 평균보다 8% 뛰어난 성적을 거둔 셈입니다. 이 중 박경완이 포수 마스크를 썼을 때는 .242/.329/0.359로 살짝 더 좋았습니다. (OPS+ 91)

그런데 박경완은 득점권에서 OPS+ 91로 상대 타자를 막았지만 정상호는 OPS+ 102를 내줬습니다. 그 결과 평균 자책 0.5가 넘는 차이가 났습니다. 두 포수가 공을 받은 투수가 서로 달라 생긴 우연일까요?

더 보겠습니다. 박경완은 2010년 득점권 상황에서 OPS .710을 허용했습니다. 리그 평균은 .787. 지난해 조인성은 같은 상황에서 .765, 리그 평균은 .729였습니다. 지난해만 봐도 박경완이 득점권에서 상대 타자들을 타율 .246으로 묶을 때 조인성은 .265를 허용했습니다. 역시나 우연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구력을 측정하는 데 흔히 쓰는 삼진 대 볼넷 비율(K/BB)도 2010년 박경완은 2.05(리그 평균 1.74), 지난해 조인성은 1.66(리그 1.80)이었습니다. 박경완의 지난해 K/BB도 1.89로 조인성보다 좋았습니다. 같은 패턴이 계속 나타나는 데 이번에도 또 우연일까요?

 연도  포수  평균 자책
 (ERA+)
 K/BB
 (K/BB+)
 OPS
 (OPS+)
 득점권 OPS
 (OPS+)
 헛스윙
 (헛스윙+)
 2010  박경완  3.58
 (128)
 2.05
 (116)
 .688
 (91)
 .710
 (91)
 9.5%
 (118)
 2010  정상호  4.11
 (116)
 1.75
 (101)
 .686
 (91)
 .804
 (102)
 9.3%
 (116)
 2012  박경완  2.98
 (123)
 1.89
 (104)
 .654
 (94)
 .750
 (103)
 7.9%
 (94)
 2012  조인성  4.11
 (93)
 1.83
 (91)
 .718
 (103)
 .765
 (105)
 7.5%
 (93)

이 모든 게 우연이라고 해도, 이만수 감독이 이야기한 '전체의 흐름'이라는 측면에서도 꾸준히 박경완이 조인성보다 나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우연이 반복되는 건 실력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실적이라고는 할 수 있죠. 그리고 보통은 실적이 좋은 선수는 일단 써 보는 게 일반적인 기용법입니다.


그런데도 이 감독은 이번 시즌에도 박경완 대신 조인성을 주전 포수로 택했습니다. 자신을 쓰지 않을 거면 트레이드 시켜달라던 박경완 요구도 들어주지 않은 채 말입니다. 이 감독은 기본적으로 박경완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그를 기용하겠다는 의견입니다. 

이 감독은 "(트레이드를 요구할 때) 경완이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나도 선수 시절 말년에 시합 못 뛰고 매일 더그아웃에서 벤치만 달구고 있을 때 트레이드 욕심이 생겼다"며 "현실에서 도망가려는 것보다는 그 현실을 극복해서 이겨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그 선수(박경완)를 쓰려고 해도 부상 때문에 쓸 수 없었다. 그런데 시범경기 막판에 허벅지 근육에 부상을 당해 어쩔 수 없이 제외시킬 수밖에 없었다"며 "2군 경기에 출전하다가 1군에 올리려 했더니 이번엔 등에 담이 와 뛸 수 없었다. 지금 경완이는 퓨처스리그에서 활약 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박경완과 관련된 기사를 보면 부상 소식은 거의 없고, 이만수가 왜 박경완을 1군에 안올리는지에 대한 기사들이 많더라. 경완이를 사랑하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좋은 기량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도 했습니다.


저 역시 이 감독 말씀이 전부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 감독께서 지론에 충실하게 엔트리를 운영해 가시리라 믿습니다. 자기하고 똑같은 모습으로 레전드 또 한 명이 물러나는 걸 원하시는 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올해도 우연이 계속되리라는 법은 당연히 없습니다. 그러나 박경완이 다시 옛 기량을 되찾지 못 하더라도 '납득의 기회'는 필요합니다. 우연이 끝나면 실적도 끝나고, 그러면 '아, 이제 옷을 벗을 때가 됐다'고 스스로 느낄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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