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 투수 이형종(18)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고교 야구 선수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 '독일병정' 박노준이 고교생이던 시절 인터넷이 있었다면 당연한 사건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지금 달력 맨 윗머리에는 2007이라는 숫자가 적혀있다.
물론 이형종의 투구는 문자 그대로 눈물겨웠다. 선발 투수는 아니었지만 팀을 구원하기 위해 두 번이나 구원 등판한 이형종. 그러나 승리의 여신은 그의 편이 아니었고, 9회말에 허용한 동점타에 이형종은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훔쳐야했다.
그것도 모자라 결국 끝내기 안타를 얻어맞으며 이형종은 끝끝내 '눈물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고교 야구만이 안겨줄 수 있는 뜨거운 휴먼 스토리는 그렇게 씌어졌다. 결승전을 생중계한 KBSn 스포츠는 드물게 패전 투수 인터뷰까지 잊지 않았다.
그 경기는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마지막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 경기이기도 했다. 많은 야구인들 노력에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동대문구장. 이제 동대문구장에서는 영원히 대통령배 경기를 볼 수 없다.
그래서 이형종의 눈물이 비단 선수 본인 그리고 서울고 응원단만의 눈물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오히려 그 눈물은 바로 우리 야구팬이 흘려야 할 눈물이었다. 이형종의 승리를, 동대문구장을 지켜주지 못한 건 바로 우리 어른들이니 말이다.
고교 야구팀은 갈수록 준다. 그런데도 선수가 모자라 각 학교 에이스는 연투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우리 야구 역사의 상징이던 운동장 역시 곧 사라질 판이다. 또 프로야구 생중계 절반은 일본 야구 차지다. 그게 엄연한 우리 야구 현실이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당시 전면에 내세운 슬로건은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이었다. 세월이 20년을 훌쩍 넘어 이제 그 어린이들이 어른이 됐다. 우리는 야구를 통해 어떤 꿈과 희망을 얻었을까?
오늘날 구직자 희망 직종 1순위는 공무원이다. 젊은이들이 모험과 도전보다 안정과 편안함을 선호한다는 얘기다. 야구계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감독들은 '짜내기'에 급급하고, 방송사 역시 손쉽게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는 외국 프로야구에 매달린다.
그래서 이형종의 눈물이 야구팬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적셨는지도 모르겠다. 이게 야구라고. 내 속에 남아 있는 0.1% 에너지까지 쥐어짜서 내 심장을 던지고 있다고. 나의 열정이 패배자의 열정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야구가 그깟 공놀이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이형종은 그렇게 우리 어른들에게 울부짖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언제 마지막으로 그렇게 뜨거워 봤는가? 언제 그렇게 최선을 다하고, 분하고 억울해서 울어봤는가? 그렇게 서럽고 또 서러워 봤는가? 혹시 자신은 경제적 안정만을 꿈꾸면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한 이승엽을 향해 꿈을 좇지 않는다고 비난해 본 적은 없는가?
우리 야구가 울고 있다. 낙후된 그라운드 위에서, 텅 빈 관중석 사이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맞으며 그렇게 울고 있다. 이제 우리가 뜨겁게 감싸줄 때다. 어린 시절 처음 야구장을 찾았던 그 설렘에 대한 보답으로, 나무 몽둥이 하나와 정구공 하나만 있으면 해가 가는 줄 몰랐던 그 즐거운 추억에 대한 보답으로, 이제 우리가 뜨거워질 때다.
뜨거워지는 일, 전혀 어렵지 않다. 당신의 생계를 파탄으로 몰고 가지도 않으며, 안정적인 직업을 앗아가지도 않는다. 그저 1주일에 한번쯤 퇴근 후 야구장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는 건 어떨까? 담배 연기 자욱한 실내를 벗어나 한번쯤 탁 트인 야구장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셔보는 건 어떨까? 1주일에 한번이 못 된다면 한 달에 한번만이라도 말이다.
경기장이 낙후되어 가기 꺼려진다 말하지 말자. 모두가 당신이 야구를 버려둔 사이에 곪아터진 상처다. 왜 야구장을 새로 지어야 하는지 우리의 발걸음이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 왜 국내 프로야구를 생중계 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우리 야구를 살찌워주지 않으면 이대로 우리 야구는 말라비틀어질 것이다.
이제 겨우 18살밖에 안 된 녀석이 어깨도 제대로 못 올리며 마운드 위에 서 있었다. 일본 갑자원을 부러워하는 사이 동대문구장은 문화재 인정도 못 받았다. SBS에서 뉴스는 1시간 빠르지만, 야구 중계는 4시간 늦다. 이거 이 어린 애한테 너무 쪽팔린 일 아닐까?
자, 야구장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