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남자프로테니스(ATP) 홈페이지 랭킹 시스템에 따르면 존 이스너(32·미국·세계랭킹 22위·사진)는 최근 52주(1년) 동안 서브가 가장 좋았던 선수입니다. 이스너는 키 208㎝로 1997년부터 최근 20년 동안(호주 오픈은 21년 동안) 메이저 대회 남자 단식 출전 선수 (829명 중 ATP 홈페이지에 키가 나와 있는) 791명 가운데 세 번째로 키가 큽니다. 이 기간 두 번째로 서브가 좋았던 건 키 211㎝인 이보 카를로비치(38·크로아티아·21위)였습니다. 


그러니 조만간 카를로비치하고 키가 똑같은 레일리 오펠카(20·미국·173위)가 서브 랭킹에 이름을 올려도 놀랄 일이 아닐지 모릅니다. 키가 크면 서브가 좋아지거든요. 이 기간 열린 메이저 대회 남자 단식 (1만228 경기 중 선수 키를 알 수 있는) 1만193 경기 데이터를 (후진제거 방식으로 선형 회귀)분석해 보면 전체 득점 중에서 서브 에이스가 차지하는 비율(서브 에이스 비율)을 가장 잘 설명하는 건 키(β .422)였고 그다음이 코트 바닥(β .149)이었습니다. 나이(β .041)가 제일 영향이 적었습니다.


We got tall guys. #MemphisO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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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메이저 대회 남자 단식 참가 선수 평균 키는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1997년에는 평균 184.4㎝였는데 올해 호주 오픈 때는 186.6㎝로 2.2㎝ 커졌습니다. 메이저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128명) 풀이 갑자기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테니 올해 키가 갑자기 줄어들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서브 에이스는 키가 제일 끼치는 영향 많이 끼친다고 했으니까 그럼 서브 에이스도 늘었겠죠? 1997년에는 전체 서브 득점 중 6.1%가 서브 에이스였는데 올해 호주 오픈 때는 9.1%로 서브 에이스 비율이 53.4% 늘었습니다. 서브 에이스가 잘 나오지 않는 클레이 코트(프랑스 오픈)에서 아직 올해 대회를 치르지 않았으니 지난해(8.1%)하고 비교해도 32.5% 상승입니다.


이건 국제테니스연맹(ITF)에서 서브 속도를 낮추려고 '느린 공' 세 가지를 공인구로 채택했던 걸 감안하면 뜻밖입니다. ITF는 '서브 앤드 발리' 전술이 테니스를 지루하게 만든다며 2002년 공인구를 새로 도입했습니다. 그런데도 서브는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시속 225㎞가 넘는 서브 69개 가운데 64개(92.8%)가 2002년 이후에 나왔습니다. (바닥에서 반발력이 줄어든 공은 당연히 라켓에 맞을 때도 반발력이 줄어들지만) 라켓 기술이 점점 발전하고 또 (당연히) 선수들 키가 커진 효과입니다. 


이걸 통계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선수들 키가 서브 에이스 비율에 '매개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야구에서 왼손타자가 늘어나면서 필드 안에 타구를 때렸을 때 타율을 나타내는 BABIP(Batting Averages on Balls In Play)가 전체적으로 늘어난 것하고 같은 이치입니다.



키가 크면 서브에 유리한 건 각도 때문입니다(아래 그림 참조). 더 높은 위치에서 서브를 내리 꽂으면 네트에 걸릴 위험이 줄어듭니다. 키가 크면 보통 팔도 더 기니까 그 효과가 더욱 크게 나타나죠. 또 높은 곳에서 날아온 공은 바닥에 튄 다음에도 더 높게 치솟기 때문에 상대 선수가 리턴 위치를 잡는 데도 애를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거꾸로 키 큰 선수는 리턴이 약합니다. 머신러닝(기계학습)을 활용한 분류 기법 중 하나인 'k 평균 군집 분석'을 이 리스트에 속한 선수들 통산 서비스, 리턴 게임 승률에 적용해 보면 키가 클수록 서브 승률이 좋아지지만 리턴 승률은 내려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색깔이 짙을수록 해당 영역에 선수가 많다는 뜻입니다.


'k 평균'에서 k는 군집(cluster) 숫자를 뜻하는데요, '팔꿈치(elbow) 방식'은 클러스터 2개가 제일 좋다고 제안합니다. 위 그림을 두 군집으로 나눠 그린 이유입니다. 임의로 군집을 4개로 나눠도 결과는 같습니다. A~F는 각 게임별 승률을 20% 단위로 대학 학점처럼 표현한 겁니다.


이렇게 선수들이 따낸 '학점'을 가지고 메이저 대회 승수를 따져 보면 당연히 서브도 A, 리턴도 A인 선수가 제일 많이 이겼습니다(1709승).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서브가 더 중요합니다. 서브가 A, 리턴이 B인 선수는 1422승을 올렸고 리턴 A, 서브 B인 선수는 1286승으로 이보다 적었습니다. 또 이 기간 메이저 단식 챔피언 81명 중에서 74명(91.4%)가 서브 A학점을 받았는데 리턴 A는 61명(75.3%)으로 이보다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키 큰 선수들도 기량이 떨어지는 리턴을 보완하기보다 이미 강한 서브를 더 갈고 닦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1987년에도 키 큰 선수 중에 서브 게임 승률이 높았던 선수가 더 많았던 게 사실이지만 지난해처럼 틈(서브 아래 부분)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이 그림은 그해 서브, 리턴 게임 승률이 가장 좋았던 50명 키를 가지고 그린 상자-수염 그래프입니다.


성적을 보면 이런 전략이 나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샘플로 삼고 있는 1만193 경기에서 맞대결 두 선수 중 키카 큰 쪽이 (기권을 포함해) 5862승(승률 .575)을 거뒀습니다. 키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승률이 7.5%포인트 올라가는 겁니다. 또 현재 세계랭킹 100위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선수는 평균 188.1㎝로 (메이저 대회 참가 인원 두 배인) 256위까지 평균 186.0㎝보다 평균 2.1cm더 큽니다. 


여자 선수들은 어떨까요? 일단 여자프로테니스(WTA) 홈페이지는 ATP처럼 메이저 대회 성적을 따로 저장한 꼭지가 없습니다. 그래도 키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단 키는 늘었습니다. 현재 세계랭킹 100위 안에 드는 선수는 평균 173.8㎝로 1997년 연말에 같은 랭킹에 들었던 선수 평균(171.4㎝)보다 2.4㎝ 커졌습니다. 또 랭킹 10위 안에 드는 선수는 평균 174.4㎝로 256위까지 평균(173.4㎝)보다 1㎝ 컸습니다. 이 기간 메이저 단식 챔피언 81명은 평균 175.9㎝였고, 우승 횟수를 곱해 '가중 평균'을 구하면 176.1㎝로 조금 더 올랐습니다. 키 175㎝로 상대적으로 작은 세리나 윌리엄스(36·미국·1위)가 23번(28.4%)이나 우승했는데도 그렇습니다.


결국 여자 선수들이 남자 선수들과 정반대 길을 걸었다고 볼 근거는 없는 셈입니다. 오히려 역시 키가 크면 유리할 확률이 더 높아 보입니다. 그러니까 조만간 2m짜리 테니스 선수가 즐비해도 놀라실 필요 없습니다. 이미 13명이 2m 이상입니다. 키다리가 테니스의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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