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모든 사람이 나를 비판하지 못해 안달입니다. 나를 욕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게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맷집이 좋다는 걸 잘 아는가 봐요(Everyone threw the blame on me. I have noticed they nearly always do. I suppose it is because they think I shall be able to bear it best). -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


거꾸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역시 참 맷집 없는 사람인가 봅니다.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르브론 제임스(34·LA 레이커스)가 미국 CNN 방송 인터뷰에서 한마디 했다고 발끈했거든요.


제임스는 지난달 30일(이하 현지시간) 자기 고향 미국 오하이오주 애크런에서 열린 ‘아이 프로미스(I promise)’ 학교 개교식에 참석했습니다. 이 학교는 제임스가 애크런교육청과 함께 ‘위기의 학생들’을 돕는 교육 지원 사업을 벌이기로 뜻을 모아 문을 열게 됐습니다. 


제임스는 이날 행사가 끝난 뒤 돈 레몬 CNN 앵커와 만나 이 학교 개교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자기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러다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선수들이 국가 연주 때 무릎을 꿇는 문제로 화제가 넘어갔습니다. 


NFL에서 국가 연주 때 처음 무릎을 꿇은 건 콜린 캐퍼닉(31·당시 샌프란시스코·사진)이었습니다. 


2016년 8월 미국에서는 흑인이 백인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렸다가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습니다.


그러자 캐퍼닉은 ‘흑인에 대한 사법적인 린치를 중단하라’며 그달 26일 열린 시범경기 때 ‘별이 빛나는 깃발’이 울려 퍼지는 동안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뒤 “인종차별 하는 나라를 위해서는 일어나고 싶지 않다”고 인터뷰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캐퍼닉은) 자기에게 어울리는 나라로 떠나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나라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밝혔습니다. 


이후에도 무릎 꿇기 열풍이 더욱 거세게 불었고, 트럼프 대통령도 틈날 때마다 이를 반(反)애국적이라고 비판하며 논란의 불길이 더욱 치솟았습니다.


이에 대해 제임스는 이날 인터뷰에서 “지난 몇 달간 (트럼프 대통령이) 스포츠를 이용해 우리를 분열시키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트럼프와는 절대 마주 앉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CNN은 이 인터뷰를 3일 방영했습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여기 아니면 어디겠어요?) 트위터에 “제임스가 방금 TV에서 제일 멍청한 남자 레몬과 인터뷰했다. 레몬 덕분에 제임스가 똑똑해 보였다. 제임스가 그렇게 보이기가 쉽지 않은 데 말이다. 나는 마이크가 좋다”고 썼습니다.



여기서 마이크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55)을 지칭한다는 풀이가 중론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조던은 자기 대변인을 통해 “나는 제임스를 지지한다. 그는 지역 사회에 엄청난 공헌을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레몬 앵커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죠? 그는 “누가 진짜 멍청이인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사람? 아니면 케이지로 보내는 사람?”이라고 트위터에 썼습니다.



케이지(cage) 이야기가 나온 건 트럼프 대통령이 밀입국자를 감금하는 동시에 이들 자녀는 따로 수용하는 격리 정책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이 격리 수용소가 케이지 구조였습니다(사진 참조). 


이 정책 때문에 논란이 일었을 때 슬로베니아 출신인 멜라니아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인은 반대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트럼프 영부인 대변인 스테파니 그리섬 공보관은 “멜라니아 여사가 ‘법을 따르는 나라가 필요하지만 또한 마음으로 다스리는 나라 역시 필요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제임스에 대한 이번 평가에도 영부인은 동의하지 않는 눈치입니다. 그리섬 공보관은 “멜라니아 여사가 ‘제임스 씨가 다음 세대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면서 “영부인은 ‘기회가 된다면 아이 프로미스 학교도 방문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고 CNN에 공문을 보냈습니다.


여기서 드는 의문. 그렇다면 혹시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본인이 뜻대로 질러본 다음 아내를 방패막이로 쓰는 건 아닐까요?


사실 이건 처칠 총리가 자주 써먹던(?)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처칠 총리가 처음 하원의원 후보로 출마했을 때, 상대 후보는 인신공격도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었습니다.


"처칠은 심각한 늦잠꾸러기라고 합니다. 이렇게 게으른 사람을 국회에 보내도 되겠습니까?"


처칠 총리는 이렇게 응수했습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예쁜 아내와 같이 산다면 아침에 절대 일찍 일어나지 못할 겁니다."


총리가 된 다음에도 그는 정시 출근하고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회의에 늦은 그는 “다음부터는 회의 전날에는 아내와 각방을 쓰겠다”는 말로 변명을 대신했습니다.


실제로 처칠 총리(사진 오른쪽)는 57년간 함께 한 아내 클레멘타인 여사(1885~1977·왼쪽)만을 너무나 열렬하게(?) 사랑한 나머지 동성애자로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스스로 지능지수(IQ)가 높다고 자랑하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실제로도 머리가 썩 좋은 편일 테고, 아마 어렸을 때부터 ‘머리 참 좋다’는 말을 지겹도록 듣고 자랐을 확률이 높을 겁니다. 분명 좋은 유전자를 타고 났을 테니까요.


그런데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 박사에 따르면 좋은 유전자를 드러내는 가장 좋은 표지는 ‘유머’입니다. 창의적이고 머리 회전이 뛰어나지 않으면 상대방이 기분 좋게 웃음 짓게 만드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런 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IQ가 최상위 수준이라고 보기는 2% 부족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를 ‘바보’라고 놀리는 건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아무도 웃지 않을 이야기니까요.


게다가 대답이 없을 땐 대답이 없는 게 대답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하는 정도라면 심각합니다. 제임스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 트위터 때문에 난리가 난 4일 해안경비대 창설기념일 축하 트위트를 날리며 ‘바이 더 웨이’를 선택했습니다.



이럴 때 태평양 건너에 사는 스포츠 팬은 어떻게 받아들이는 게 맞을까요? 사실 저런 ‘부자 형’ 하나 있다고 사실 나쁠 건 없을 텐데, 그냥 상원의원 정도만 해도 봐줄 만할 텐데, 대통령이라서 그래서 더 재미있다고 해야 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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