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우리는 현진건의 소설이 발표된 지 8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술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들의 평균 알코올 소비량이 얼마나 되는지 굳이 통계를 따져보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음주는 하나의 '문화'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사실상 20대 이상 성인들의 거의 모든 여가 생활이 음주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실이다. 덕분에 매일 아침 해장국 집은 손님들이 가득 차고, 전날 회식을 치른 사무실엔 사우나로 달려간 직원들의 빈자리가 넘쳐난다.

우리 사회에서 연간 술로 인해 소비되는 사회문화적 비용이 15조원에 달한다고 하니 확실히 심각한 사회적 문제는 문제인 모양이다. 그래서 이런 문화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보건복지부는 소위 '파랑새 플랜 2010'을 발표했다. 알코올 문제없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국가알코올종합계획이라는 명목으로 말이다. 야구팬으로서 눈에 거슬렸던 건 이 계획이 실행되면 더 이상 야구장에서 맥주를 먹을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야구장에 맥주를 허용한지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이런 엉뚱한 제약이 다시 야구팬들의 목을 죄게 된 것이다.

솔직하게 얘기해 보자. 야구장에 공식적으로 맥주가 허용되지 전에는 아무도 야구장에서 술을 단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을까? 오히려 맥주보다 더 독한 각종 주류를 어둠의 경로를 통해 야구장 안에 몰래 가져왔던 게 사실이다. 요즘도 알코올 도수 5% 미만의 맥주만 반입이 허용되지만, 소주를 마시는 팬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맥주를 팔기에 이전보다 독주를 마시는 팬들이 줄어든 것도 분명한 일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음주 문화가 적어도 야구장 안에서는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대로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제 다시 아예 야구장에서 맥주를 팔지 못하게 한단다. 너무도 쉽게 생각해 보자. 술집에서 자리 잡고 마시는 술의 양과 야구장에서 경기를 보다 더위 또는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마시는 술 가운데 어떤 게 더 양이 많을까? 경기 끝나고는 안 마시냐고?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술집을 전전한 사람들은 모두 10시 땡 치면 모두들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가? 적어도 야구팬들만큼은 정해진 시간 동안 분명 술집에서보다 더 적은 양의 알코올밖에 마실 수 없다. 그럼 이 편이 오히려 알코올 소비를 줄일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어차피 야구 팬도 아닌 사람이 술을 마시기 위해 야구장을 찾을 확률은 지극히 낮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건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1) 범법자를 늘리면서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든다. 어차피 사람들은 예전처럼 각종 수단을 동원해 술을 야구장 안에 반입할 것이고, 맥주에 만족하던 애주가들 역시 다시 독주로 발검을을 돌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안 먹다가 먹게 되는 것과 먹다가 못 먹게 되는 건 확실히 다른 일이라는 얘기다.

2) 야구장에서 적은 양의 알코올에 만족할 팬들을 오히려 술집으로 유도하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시원한 TV와 맥주가 있는 에어컨 바람 속 호프집, 무더위에 갈증을 식힐 것이라곤 오직 얼음물과 더더욱 갈증을 유발하는 음료수뿐인 야구장. 당신이라면 어딜 가겠는가? 결국 건전한 음주 문화를 오히려 나쁜 쪽으로 이끌고 있는 게 바로 이 정책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 계획을 발의하신 공무원 분을 한번 찾아뵙고 싶다. 그리고는 업무가 무척이나 바쁘시겠지만, 사무실에서 손을 잡아끌고 무작정 야구장으로 향하는 거다. 기왕이면 낮경기라면 더더욱 좋겠다. 그늘도 잘 지지 않는 자리를 잡고 앉아, 그 분께 3시간이 넘는 경기 내내 목이 터져라 우리 팀을 응원해 달라는 부탁을 드릴 것이다. 그럼 아마 그 분도 지금 자신이 얼마나 잘못된 판정을 내렸는지 단번에 알게 되실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는 이렇게 묻고 싶다. "오늘이 야구장 처음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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