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2019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에서 LG를 물리친 뒤 기뻐하고 있는 키움 선수단. 키움 제공


히어로즈가 2년 연속 '비룡 사냥'에 나섭니다.


정규리그 3위 키움이 2019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준PO)에서 프리뷰 예상 그대로 4위 LG를 3승 1패로 물리치고 플레이오프(PO)행 티켓을 따냈습니다.


이로써 (지난해까지 넥센이라는 이름을 쓴) 키움과 정규리그 우승을 코앞에서 놓친 SK가 올해도 한국시리즈(KS) 진출 티켓을 놓고 5전 3선승제로 맞대결을 벌이게 됐습니다.


지난해에는 SK가 넥센을 3승 2패로 물리치고 KS에 진출해 결국 정규리그 우승팀 두산을 꺾고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습니다.


올해는 2013~2016년 넥센 지휘봉을 잡았던 그리고 팀을 내팽개치고 도망갔던 염경엽 감독이 SK 감독석에 앉아 있기 때문에 더욱 흥미진진한 경기를 예상할 수 있는 상황.


준PO 때와 마찬가지로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 그리고 세이버메트릭스(야구통계학) 사이트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prospectus·'안내서'라는 뜻)'에서 '가을야구 비밀 소스'로 꼽은 △투수진 삼진 능력 △훌륭한 마무리 투수 △뛰어난 수비력을 중심으로 PO를 전망해 보겠습니다.



시뮬레이션에선 지지 않는 키움

키움은 3위(승률 .601)로 정규리그를 마감했지만 득점과 실점을 토대로 계산한 예상 승률 그러니까 피타고라스 승률은 1위였습니다.


 구단  승  패  무  승률  득점  실점  피타고라스 승률
 SK  88  55  1  .615  655  546  .583
 키움  86  57  1  .601  780  572  .644


맞대결 성적을 예상할 때는 실제 승률보다 피타고라스 승률을 쓰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키움음 사실 시뮬레이션으로는 어떤 팀과 맞붙어도 이기는 것으로 나옵니다.


'몬테카를로 방법'으로 이번 PO를 시뮬레이션해 보면 키움이 이길 확률이 61.7%라는 결과가 나옵니다. 준PO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키움이 3승 1패로 이길 확률이 제일 높습니다. 



그러나 이 전망은 두 팀이 곧바로 맞붙었을 때 얘기. 키움은 준PO를 거친 반면 SK는 휴식을 취하면서 전력을 가다듬었습니다.


프로야구 역사상 PO는 총 28번 열렸고 이 중 준PO 승리팀이 KS에 진출한 건 13번(46.4%)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61.5%라는 숫자는 사실상 5대5를 뜻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탈삼진 능력은 SK 승! 그런데…

SK 타자 중 25.9%를 삼진으로 돌려 세운 크린토피아 키움 조상우. 키움 제공


기본적인 삼진 능력은 SK가 뛰어납니다. SK 투수진은 정규리그 때 상대 타자 20%를 삼진으로 잡아내 이 부문 선두를 차지했습니다. 키움도 18.1%(2위)지만 SK보다 밀리는 건 사실입니다. 


단, 홈런이 늘어나면 삼진도 같이 늘어난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SK 안방 문학구장은 리그 최고 홈런 공장장이고 그러면 삼진도 같이 늘어납니다. 문학 구장에서는 전체 타석 중 18.9%가 삼진으로 끝이 났습니다. 리그 전체 평균(17.2%)보다 9.8% 높은 기록. 키움이 삼진율을 이만큼 끌어올리면 19.9%입니다.


문승원(30), 서진용(27), 정영일(31)이 키움 타자를 상대로는 삼진을 잘 잡지 못한다는 점도 승부에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문승원은 전체 상대 타석 중 16.9%가 삼진인데 키움을 상대로는 7.7%로 떨어지고, 서진용 역시 27.2%에서 20.8%로 줄어듭니다. 정영일도 20%에서 5.7%가 됩니다.


키움에서는 한현희(26)가 전체 19.5%에서 SK를 상대할 때 8.7%로 줄어듭니다. 대신 SK를 상대로 올 시즌 실점한 적이 없습니다. 결국 키움 관점에서는 한현희가 SK 오른손 타자를 상대로 범타를 얼마나 이끌어 낼 수 있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릴 수 있습니다. 한현희는 올 시즌 오른손 타자에게 홈런을 한 방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네, 선발 투수 위주로 설명한 준PO 때와 달리 이번 PO는 불펜 싸움에서 희비가 갈릴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마무리 투수는 무승부

염경엽 감독이 "어차피 패전처리를 해야 할 투수"라고 평가했던 윤영삼. 그는 올 시즌 62와 3분의 2이닝을 평균자책점 2.87로 막았습니다. 키움 제공


마무리 투수 비교는 준PO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마무리 투수만 놓고 보면 하재훈(29)이 오주원(34)보다 더 좋은 투수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키움은 준PO 때 확인한 것처럼 마무리 투수에 의존하는 팀이 아닙니다.


SK 염경엽 감독은 넥센 지휘봉을 잡고 있던 2015년 준플레이오프 2차전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현희와 조상우(25), 손승락(37·현 롯데)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쟤네'로 간주하고 경기를 풀어갔던 것. 이번 PO 때도 비슷한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재훈을 9회에 투입한다는 걸 전제로 뒤에서부터 경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라고 할까요?


반면 염 감독으로부터 팀을 물려받은(?) 키움 장정석 감독은 준PO 때 전혀 다른 접근법을 취했습니다. 앞에서부터 '이어 던지기' 전략을 구사해 성공을 거뒀습니다. PO라고 갑자기 불펜 운용을 바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올해 키움은 구원진 평균자책점(3.39)이 제일 낮은 팀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경기가 접전으로 흘러가면 키움이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승부가 크게 기울었을 때도 마찬가지. 어떤 투수든 마운드에 오를 수 있기 때문에 투구수에 구애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반면 염 감독 계산대로 경기가 흘러갈 때는 SK가 유리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 이유로 마무리 투수는 무승부입니다. 



수비도 무승부

동료 야수진에게 '침착하게 하자'고 주문하고 있는 키움 포수 이지영. 동아일보DB


수비도 사실상 두 팀이 별 차이가 없습니다. 범타처리율(DER)을 기준으로 하면 SK(.695)가 키움(.685)에 앞서 있는 건 사실. 그런데 사실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에서 이야기한 수비력은 FRAA(Fielding Runs Above Average) 기준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기록 가운데 이와 가장 비슷한 기록은 스탯티즈(www.statiz.co.kr)에서 제공하는 'RAAwithADJ'. 이 기록을 보면 SK 4.99, 키움 4.90으로 사실상 동점입니다. 


지난해 PO 5차전이 키움 2루수 김혜성(20)의 송구 실책 하나로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간 건 사실이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그랬다면 키움이 올해 준PO 4차전 때 무너졌어야 했는데 이겨냈으니까요. 이어 던지기가 가능한 덕에 수비에서 실수가 나와도 분위기를 바꾸는 게 가능한 겁니다.


그래서 포수가 중요합니다. 큰 경기에서 포수가 중요하다는 건 새삼 강조할 게 없는 일. SK 이재(31)과 키움 이지영(33) 모두 '우승 포수' 출신이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단, 키움은 포스트시즌 경험이 부족한 외국인 투수 요키시(30)에게 '전담 포수' 박동원(29)을 붙여주기 어려운 상태이기 때문에 이지영의 활약이 더욱 중요합니다. 



키 플레이어는 누구?

3차전에 끝내겠다고 다짐하고 있는(응?) 키움 이정후. 동아일보DB


키움은 이정후(21)입니다. 이정후는 지난해 준PO 2차전 때 슬라이딩 캐치를 하다가 어깨를 다쳐 PO에는 나서지 못했습니다. 이정후는 "지난해 제가 없이도 팀이 잘해서 부담이 되기도 한다. '올해는 내가 있어서 못하면 어떡하나' 그런 고민도 든다. 민폐만 안 끼쳤으면 좋겠다"면서 "지난해는 결과적으로 졌으니까 올해는 꼭 이기고 싶다. 꼭 이겨서 잠실로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샌즈(32)도 부활이 절실합니다. 준PO 4차전 7회초에 역전 적시타를 치기는 했지만 .267/.353/.267가 키움 팬이 샌즈에게 기대했던 모습은 아닐 겁니다. 샌즈는 오른쪽 무릎이 좋지 않은 상황. 준PO를 앞두고 주사를 맞고 뛰는 상태입니다. 일단은 준PO 때처럼 '눈 야구'를 하다가 결정적일 때 한 방 쳐주기를 바랍니다.


SK는 역시 최정(32)을 꼽을 수 있습니다. 최정은 올해 키움을 상대로 .211/.328/.333을 기록하는 데 그쳤습니다. OPS(출루율+장타력)는 .662. 아홉 개 상대 팀 가운데 가장 낮은 기록입니다. 최정이 이 기록을 극복하고 살아나면 SK도 살아날 것이고 아니라면 팀도 가라앉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가을이면 언제나 그렇듯 김강민(37)도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강민은 가을야구에서는 숫자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선수. 지난해 PO 5차전 때 그랬던 것처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얻어맞을지 모릅니다. 키움 관점에서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지난해보다 한 살 더 먹었다는 점입니다.



드래곤 퀘스트


팔은 안으로 굽게 마련이라 삼진과 수비 능력에서 모두 SK가 앞서 있는데 그렇게 보기 싫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비록 마무리에는 실패했지만 SK가 올 시즌 저 높은 곳을 날고 있던 건 사실이까 말입니다.


하지만 올해 SK는 1점차 승부에서 비정상적으로 강한 기록(25승 8패)을 남겼습니다. 1점차 승률 .758은 프로야구 원년(1982년) OB가 남긴 .778(21승 6패)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성적입니다. 승률 자체에 '행운 거품'이 잔뜩 끼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이유로 키움이 준PO를 치렀다고 해서 크게 불리할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유로 히어로즈가 이번에는 3승 2패로 '드래곤 퀘스트'에 성공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사실 어떤 팀이든 그 팀 감독이 염경엽이라는 이름을 쓰는 이상 키움 팬이 질 거라고 쓸 수는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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