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2019 한국시리즈 진출을 자축하고 있는 키움 선수단. 키움 제공 


히어로즈가 5년 만에 한국시리즈로 갑니다.


정규리그 3위 키움이 2019 플레이오프(PO)에서 (아주아주 기쁘게도) 프리뷰 전망이 무색하게 2위 SK에 3전 전승을 거두고 한국시리즈행 티켓을 따냈습니다.


이로써 키움은 정규리그 최종일(1일) 한국시리즈 직행을 확정한 두산과 한국시리즈 맞대결을 벌입니다.


키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건 넥센이라는 이름을 쓰던 2014년 이후 5년 만. 당시에는 삼성에 2승 4패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반대로 두산은 2015년 이후 5년 연속으로 한국시리즈를 치르게 됐습니다. 두산은 이 가운데 2015년2016년 2연패를 차지했습니다.


키움(당시 넥센)으로서는 2015년이 아쉽습니다.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6회말까지 9-2로 앞서던 경기를 9-11로 내줬기 때문. 지금도 7점차 역전패는 포스트시즌 최다 점수차 기록입니다.


두 팀은 2013년 준플레이오프 때도 맞붙었는데 당시에는 넥센이 첫 두 경기를 먼저 따낸 뒤 내리 세 판을 내주면서 '리버스 스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키움으로서는 이래저래 가을야구에서 두산에 빚을 진 게 많은 상황. 이 빚을 갚는 가장 확실한 길은 역시 한국시리즈 업셋(upset·하위 팀이 상위 팀을 이기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준PO 그리고 PO 때와 마찬가지로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 그리고 세이버메트릭스(야구통계학) 사이트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prospectus·'안내서'라는 뜻)'에서 '가을야구 비밀 소스'로 꼽은 △투수진 삼진 능력 △훌륭한 마무리 투수 △뛰어난 수비력을 중심으로 한국시리즈를 전망해 보겠습니다.



시뮬레이션에선 지지 않는 키움(2)

키움은 3위(승률 .601)로 정규리그를 마쳤지만 득점과 실점을 토대로 계산한 예상 승률(피타고라스 승률)은 1위였습니다.


 구단  승  패  무  승률  득점  실점  피타고라스 승률
 두산  88  55  1  .615  736  550  .634
 키움  86  57  1  .601  780  572  .644


단, LG(.506)이나 SK(.583)와 달리 두산은 키움과 비교했을 때 피타고라스 승률이 그렇게 뒤지는 팀이 아닙니다. 그래서 몬테카를로 방법으로 한국시리즈를 시뮬레이션 해봐도 두 팀이 접전을 펼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전체적으로 키움이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52.3%로 나머지 47.7%는 두산 승리를 점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도 아주 관대한 전망입니다. 단일 리그로 시즌을 소화한 28년 동안 정규리그 3·4위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건 총 12번(42.8%)이며 이 중 우승을 차지한 건 1992년 롯데, 2001년 두산 그리고 2015년 역시 두산뿐입니다.


▌정규리그 3·4위 한국시리즈 도전사
 연도  구단  정규리그 순위(승률)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
 1990  삼성  4위(.558)  2승  2승  4패
 1992  롯데  3위(.563)  2승  3승 2패  4승 1패
 1995  롯데  3위(.560)  -  4승 2패  3승 4패
 1996  현대  4위(.552)  2승  3승 2패  2승 4패
 1998  LG  3위(.504)  2승  3승 1패  2승 4패
 2001  두산  3위(.508)  2승  3승 1패  4승 2패
 2002  LG  4위(.520)  2승  3승 2패  2승 4패
 2003  SK  4위(.508)  2승  3승  3승 4패
 2006  한화  3위(.540)  2승 1패  3승 1패  1승 1무 1패
 2011  SK  3위(.546)  3승 1패  3승 2패  1승 4패
 2013  두산  4위(.568)  3승 2패  3승 1패  3승 4패
 2015  두산  4위(.549)  3승 1패  3승 2패  4승 1패
 2019  키움  3위(.601)  3승 1패  3승  ?


사실 정규리그 2위가 우승한 것도 두 번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한국시리즈에서 정규리그 1위 팀을 꺾기가 어려운 것. 지금까지 한국시리즈는 총 157경기를 소화했는데 이 경기에서 1위 팀은 99승 5무 53패(승률 .651)를 기록했습니다. 같은 기간 정규리그 때 1위 팀 승률은 .620이었으니까 휴식이 팀 전력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니 키움이 아무리 상승세를 탔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극복해야 한다는 건 달라지지 않습니다.



삼진은 키움 승!

정규리그 때 두산 타선을 .223/.277/.289로 잠재운 키움 요키시. 키움 제공


삼진은 키움이 강세입니다. 키움 투수진은 정규리그 때 상태 타자 가운데 18.1%를 삼진으로 돌려세웠습니다. 10개 구단 가운데 2위에 해당하는 성적입니다. 반면 두산 투수진은 삼진율 15.8%로 9위입니다. 게다가 키움을 상대로는 14.4%로 기록이 더욱 내려갑니다.


심지어 1차전 두산 선발이 유력한 린드블럼(32)도 그렇습니다. 린드블럼은 정규시즌 때 상태 타자 24.5%를 삼진 처리하면서 이 부문 1위에 이름을 올렸지만 키움을 상대로는 18.3%로 기록이 내려갑니다.


그렇다고 키움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역시 1차전 선발로 나설 확률이 높은 브리검(31)은 두산 타자를 상대로 삼진율 12.5%를 기록하는 데 그쳤습니다. 시즌 전체 기록은 19.4%입니다. 지난해에도 시즌 전체 평균 21.1%, 두산 상대 16.5%로 역시 두산에 약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키움 장정석 감독으로서는 요키시(30)를 1차전 선발로 투입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요키시 역시 두산 타선을 상대로 삼진으로 재미를 본 건 아니지만(삼진율 14.6%) 원래 팀 OPS(출루율+장타력) .745를 기록한 두산 타선을 4경기에 선발 등판해 .566으로 막았다는 건 충분히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요키시가 포스트시즌 들어 흔들리고 있다는 점. 반면 브리검은 완전 '에이스' 모드입니다. '상대 기록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최근 기록을 믿을 것인가' 장 감독이 고민이 깊을 것 같습니다.


만약 키움이 1차전에서 두산을 꺾는다면 2차전 때는 이승호(20)를 선발 마운드에 올리는 것도 고민해 볼 수 있습니다. 이승호는 두산 타자 97명을 상대해 이 중 17명(17.5%)으로부터 삼진을 빼앗았습니다. 키움 선발진 가운데 가장 높은 숫자입니다. 게다가 이승호 역시 정규리그 때 두산 타선을 OPS .608로 막았습니다.



마무리 투수는 두산 승!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5와 3분의 2이닝 무자책점을 기록 중인 오주원. 키움 제공


키움은 준PO 때 투수를 경기당 평균 6.3명 투입했습니다. 포스트시즌 단일 시리즈 최다 기록입니다. 그리고 PO 때 평균 6.7명을 투입하면서 곧바로 이 기록을 깼습니다. 이 7경기에서 키움 구원진이 기록한 평균자책점은 1.23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마무리 투수 오주원(34)도 자기 몫을 다했습니다. 준PO 3차전 때 패전투수가 되기는 했지만 실책이 끼어 있었기 때문에 평균자책점은 여전히 0.00입니다. 그래도 불안합니다. 21타자를 상대하면서 삼진을 두 개(9.5%)밖에 잡지 못했거든요. 정규리그 때(18.4%)보다 절반 가까이 삼진율이 떨어진 겁니다.


게다가 오주원은 정규리그 때 두산을 상대로 5경기에 나와 25타자를 상대하는 동안 삼진을 딱 두 개(8%) 빼앗는데 그쳤습니다. 그 동안 두산 타선은 오주원을 .474/.480/.526으로 두드렸습니다. 최근 기록과 상대 기록이 모두 불안한 겁니다.


정규리그 때 전체 타자 중 25.3%를 삼진으로 잡아낸 김상수(31) 역시 두산을 만나서는 30타자를 상대로 삼진을 4개(13.3%) 빼앗는데 그쳤습니다. 상대 타격 기록도 .400/.500/.520으로 아주 좋지 못했습니다.


반면 두산 마무리 이형범(25)은 키움 타선을 .241/.343/.241로 막았습니다. 여기에 3주 동안 휴식을 취하고 마운드에 오르기 때문에 키움 타선이 이형범의 투심 패스트볼을 때리는 데 애를 먹는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두산에서 '조커'로 활용할 확률이 높은 이용찬(30)은 '낯섦'이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올 시즌 키움 타선이 이용찬을 상대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진 전체를 놓고 봐도 두산은 팀 평균자책점 2위(3.64)를 차지한 팀입니다. 키움(3.39)이 이 부문 1위이기는 하지만 한 쪽은 20일 넘게 휴식을 취하고 시리즈를 치르는 반면 다른 쪽은 7경기에서 경기당 평균 5이닝 이상을 소화한 상황. 지금까지는 키움 불펜이 '철벽'처럼 보였지만 한국시리즈 때는 꼭 유리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수비는 두산 완승!

플레이오프 3차전 때 땅볼을 잡아 병살 처리 중인 키움 유격수 김하성(왼쪽)과 2루수 김혜성. 키움 제공


수비는 비교가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키움도 수비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두산이 너무 압도적입니다. 일단 범타처리율(DER)에서 두산은 .705로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한 팀. 키움(.685)은 7위입니다. 이것만 놓고 봐도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PO 프리뷰 때 말씀드린 것처럼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에서 수비력 측정 기준으로 삼은 건 FRAA(Fielding Runs Above Average)였고,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기록 가운데 이와 가장 비슷한 건 스탯티즈(www.statiz.co.kr)에서 제공하는 'RAAwithADJ'입니다.


이 기록을 보면 두산은 19.05로 키움(4.90)보다 14점 넘게 앞서 있습니다. 세이버메트릭스(야구통계학)에서는 보통 추가로 10점을 더하거나 막으면 1승을 얻을 수 있다고 계산합니다. 시리즈 내내 두 팀 수비가 눈에 띌 정도로 차이가 나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두산은 내야 수비는 물론이고 외야에서도 빈틈을 찾아보기 어려운 팀. 한국시리즈 때 우익수 출장이 유력한 박건우(29)는 다른 팀이라면 충분히 중견수를 볼 수 있는 자원입니다. 실제로 현재 붙박이 중견수 정수빈(29)이 군 입대 중일 때는 중견수를 맡기도 했습니다.


반면 키움은 죄악수로 나오고 있는 김규민(26)이 PO 후반 살아났다고 하지만 임병욱(24)의 빈자리를 완전히 지울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두산 타선에는 왼손 타자가 많기 때문에 정상 컨디션이 아닌 샌즈(32)도 수비가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광활한 잠실구장 외야를 고려하면 내야뿐 아니라 외야에서 실수가 나온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입니다.


키움으로서 그나마 고무적인 건 주전 포수 이지영(33)이 최근 바짝 컨디션을 끌어올린 상태라는 점. 1차전 선발로 요키시를 내보내는 경우에도 굳이 전담포수 박동원(29) 카드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큰 경기에서 '경험'이라는 건 무시하기 어려운 자산이니까요. 

 


키 플레이어는 누구?

두산을 상대로 통산 평균자책점 1.35를 기록 중인 조상우. 키움 제공


키움은 조상우(25)입니다. 조상우는 2013년 데뷔 이후 두산을 상대로 총 23경기에 나서 33과 3분의 1이닝을 평균자책점 1.35로 막았습니다. 9개 상대 팀 가운데 제일 좋은 기록입니다. 조상우는 올해 정규리그 때도 두산 타자 19명을 상대해 그 중 6명(31.6%)을 삼진으로 잡아냈습니다.


키움 불펜 '빅3' 가운데 오주원과 김상수가 모두 올 시즌 두산을 상대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앞에서 끊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두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와도 안심할 수 있는 점수 차이를 유지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번 오주원 역시 키플레이어로 꼽을 수 있습니다. 시리즈 초반에 오주원이 흔들린다면 분위기가 급겹히 두산 쪽으로 기울 수 있습니다. 키움 장 감독이 포스트시즌 때 마운드를 꾸려가는 방식을 아주 사랑하는 한 사람이지만 이번 시리즈만큼은 오주원을 정말 잘 쓸 필요가 있습니다.


두산 선수 가운데는 오재일(33)을 꼽을 수 있습니다. 전형적인 '가을 남자' 스타일이기 때문. 올스타 브레이크 전후로 성적을 나누면 오재일은 전반기에 통산 OPS .772로 평범한 붙박이 타자지만 후반기가 되면 .949로 최우수선수(MVP) 레벨로 변신합니다. 참고로 키움 올드 팬은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강기웅(55)의 통산 OPS가 .773이고 양준혁(50)이 .950입니다.


그리고 역시 가을이 되면 오재원(34)도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사소한 플레이 하나가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큰 경기에서 다재다능한(?) 오재원이 언제 어떤 플레이로 흐름을 바꿀지 모릅니다. 키움 팬 관점에서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옛날만큼 그라운드에 나와 있는 시간이 길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점일 겁니다.



이번 가을 서울 주인은?


올해는 한미일 프로야구 모두 수도(首都)를 연고지로 삼는 팀이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한국은 서울 두 팀이 맞붙습니다.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는 각 리그 챔피언이 맞붙지만 한국 프로야구는 '계단식 포스트시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구조에서 챔프전은 '정규리그 1위팀 대관식'이 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두산이 가을야구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응원팀이 챔프전에서 패하는 걸 보고 싶은 팬은 없을 겁니다. 5년 전 당시 넥센이 한국시리즈에 올라갔을 때 쓴 글을 살짝 바꿔 인용하면:


겸손한 체 하거나 내숭 떨지 않겠습니다. 우승을 원합니다. 그대들을 믿습니다. 2019년 한국시리즈 챔피언이 되어주세요.


그리하여 간절하다고 다 이뤄진다는 건 거짓말이지만 그렇다고 지레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것. 묵묵히 실력을 키워가면 언젠가 기회는 찾아오게 마련이라는 것. 그 기회를 잡는 게 진짜 실력이라는 것. 그렇게 믿고 말하는 대로 언젠가 이뤄지게 돼 있다는 것. 그 사실을 온 세상에 다시 한번 증명해 주세요.


여러분을 결단코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미 희망의 이유 그 차제고, 기적의 살아 있는 증거니까요. 그대들이 영웅이니까요. 부탁드립니다. 꼭 2019년 챔피언이 되어주세요. 나의 사랑, 키움 히어로즈.


그런 이유로 키움이 4승 3패로 한국시리즈 업셋에 성공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2010년부터 한국시리즈는 4-5-6-7-6-5-4-5-6차전에서 끝이 났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7차전에서 끝낼 차례(?)입니다. 키움 선수단이여, 꼭 챔피언이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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