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A J 힌치(왼쪽) 메이저리그 휴스턴 전 감독과 같은 팀 제프 르나우 전 단장. 휴스턴=로이터 뉴스1


메이저리그 휴스턴이 A J 힌치 감독과 제프 르나우 단장을 동시에 해고했습니다.


최근 3년 동안 두 차례 팀을 월드시리즈로 이끌었고 그 중 2017년은 정상까지 차지한 휴스턴이 감독과 단장을 동시에 해고한 건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내린 징계 때문.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13일(이하 현지시간) 두 인물에게 1년 자격정치 처분을 내렸습니다. 이미 '휴스턴, 사인 훔쳐 2017년 MLB 챔피언 됐다?' 포스트에 남겼던 것처럼 사인 훔치기가 문제였습니다.


2017년 휴스턴에서 뛰었던 마이크 파이어스(35·현 오클랜드) 등은 지난해 11월 12일 '디 어슬레틱'에 휴스턴 선수단이 조직적으로 사인을 훔쳤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다음날 곧바로 조사위원회를 꾸렸고 이날 조사 결과와 징계 수위를 발표했습니다.


롭 만프레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는 이날 "휴스턴이 사인을 훔쳐 얼마나 이득을 따졌는지 판단하는 걸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번 일로 야구에 부정적인 인식이 늘어난 건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사인은 원래 다 훔친다?

사실 야구에서 사인은 '원래 훔치는 것'에 가깝습니다. 폴 딕슨이 쓴 책 '더 히든 랭귀지 오브 베이스볼(The Hidden Language of Baseball)'에 따르면 1876년 이미 사인 훔치기 논란이 불거졌을 정도.


내셔널리그가 출범하던 이 해 하트포트 다크 블루스는 경기장 바깥에 있는 전봇대에 올라가 상대 사인을 훔쳐 타자에게 전달하다가 걸려 공개적으로 비판받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사인 훔치기 역사가 오래 되다 보니 '당한 팀이 잘못'이라는 견해도 나름대로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예컨대 야구에서 포수와 투수가 사인을 주고 받을 때 빠른 공을 원하면 손가락 한 개, 커브 같은 느린 공을 주문할 때는 손가락 두 개를 펴는 게 일반적입니다.



물론 단순히 손가락을 한 개 또는 두 개 펴는 게 아니라 '진짜 사인' 앞뒤로 다양한 동작을 섞어서 상대를 혼란에 빠뜨립니다.


특히 주자가 (포수 바로 맞은 편에 있는) 2루에 있을 때는 사인을 간파당하기 쉽기 때문에 더욱 복잡하게 사인을 냅니다. 물론 상대팀에서 사인을 훔치고 있다는 의심이 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상대가 사인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더욱 복잡하게 사인을 내야 하는데 상대가 알게 됐다면 당한 팀도 잘못이 있다는 겁니다.



휴스턴은 어떻게 사인을 훔쳤나?

문제는 휴스턴에서 사용한 방법입니다.


기본적으로는 디 어슬레틱에서 보도했던 것처럼 원래 비디오 판정용으로 설치한 카메라를 이용해 사인을 훔쳤습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2014년 각 팀이 경기당 한 번씩 비디오 판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구장에 비디오 판정용 카메라를 설치하고, 이 카메라가 찍은 영상을 확인할 수 있는 구단 비디오 판독실도 만들었습니다.


2017년 휴스턴에서는 '주자' 노릇을 맡은 한 명이 이 방에서 대기하면서 사인을 확인한 다음 더그아웃에 있는 동료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러면 더그아웃에 있던 이들이 타자에게 사인 내용을 다시 전달했습니다.


A J 힌치 전 휴스턴 감독과 알렉스 코라 당시 같은 팀 벤치 코치. 휴스턴 크로니클 홈페이지


시즌 초반에는 알렉스 코라 벤치 코치(현 보스턴 감독)가 판독실로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식으로 사인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어떤 때는 코칭스태프가 숨겨 두고 있던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워치로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으면서 정보를 교환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코라 당시 코치가 더그아웃 바로 밖에 설치한 TV 모니터를 통해 영상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이렇게 사인 내용을 알게 되면 이들은 야구 방망이 또는 흔히 '테라건'이라고 부르는 마사지 장치로 쓰레기통을 두드려 타자에게 사인을 전달했습니다. 느린 공이 들어올 때는 쓰레기통을 두드리고 빠른 공일 때는 가만히 있는 방식이었습니다.



휴스턴 선수들도 징계를 받을까?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이런 내용을 발표한 뒤 앞서 보신 것처럼 힌치 감독과 르나우 단장에게 1년 무급 자격정치 처분을 내렸습니다. 


지난해 포스트시즌 때 기자들에게 부적절한 발언을 한 뒤 이미 팀을 떠난 브랜던 타우브먼 전 부단장도 같은 징계를 받았습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이들이 선수단에서 사인을 훔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면서 "관리 소홀 책임을 물어 중징계하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와 함께 휴스턴은 2021, 2022년 신인 지명회의(드래프트) 1, 2라운드 지명권을 박탈 당했습니다. 또 메이저리그 규정상 최대 금액인 500만 달러(약 58억 원)도 벌금으로 내게 됐습니다.


2017년 월드시리즈 우승 당시 휴스턴 선수단. 동아일보DB


단,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선수들이 사인 훔치기에 가담한 건 사실이지만 개개인별로 어느 정도 가담했는지 따지는 건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선수에 대해서는 징계를 내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지난해 11월 1일 뉴욕 메츠 감독 지휘봉을 잡게 된 카를로스 벨트란 역시 징계를 피할 수 있게 됐습니다.



문제는 코라 당시 코치입니다.


현재 그가 감독을 맡고 있는 보스턴 역시 월드시리즈 정상을 차지한 2018년 상대 사인을 훔쳤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상태.


이번에도 그가 관여했을 우려가 크기 때문에 이날 징계 수위가 나오지 않았을 뿐 코치 당시 코치가 제일 무거운 받으리라는 건 확실합니다.


다시 야구계에서 코라를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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