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9월 18일 다저 스타디움. 당시 다저스의 성적은 79승 71패로 샌디에고(78-71)에 겨우 0.5 게임차 앞선 상황. 한 치의 양보도 허락되지 않는 상황에서 양 팀이 내 놓은 선발 투수는 브레드 페니와 제이크 피비. 말 그대로 붗꽃튀는 대결이었다. 치열한 투수전이 예상되던 경기, 그러나 경기는 1회부터 전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먼저 기세를 잡은 쪽은 샌디에고였다. 마이크 피아자가 2루타로 선제 2 타점을 올린 데 이어, 마이크 카메론의 3루타 때에는 자신이 홈을 밟으며 점수를 석 점 차로 벌렸다. 피아자에 뒤이어 곧바로 볼넷으로 출루해 있던 러셀 브랜얀까지 홈을 밟으며 순식간에 점수는 석 점 차이로 벌어졌다.

여기서 만족하지 못한 파드레스 타선은 제퍼 블럼의 안타가 터지며 카메론마저 홈으로 불러들었다. 1회초 공격이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점수는 4:0, 제이크 피비가 마운드를 버티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확실히 승부를 뒤집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곧바로 속개된 1회말 다저스 공격에서 선두 타자 라파엘 퍼칼이 번트 안타를 만들어내며 공격의 물꼬를 텄다. 2번 케니 롭튼의 연속 안타로 만들어진 무사 1, 2루의 찬스. 하지만 곧바로 노마 가르시아파라의 병살타가 나왔다. 결국 제프 켄트의 2루타로 한 점만을 만회하며 다저스는 파드레스에 4:1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저스는 2회와 3회 연거푸 말론 앤더슨, 라파엘 퍼칼의 솔로 홈런과 J.D. 드류의 2루타에 힘입어 경기를 원점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이후 양 팀은 몇 차례 득점 찬스를 잡았지만 모두 득점으로 연결시키지는 못했다. 특히 6회 공격에서 무사 만루를 잡고도 2번 롭튼의 병살로 이닝을 마무리해야 했던 것은 다저스에게 뼈아플 수밖에 없던 장면이었다.

드디어 일이 터진 건 8회였다. 볼넷으로 얻어낸 1사 1루에서 조쉬 바필드의 2루타가 터지며 파드레스가 한 걸음 앞서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상대 수비가 홈을 노리는 틈을 타 바필드는 3루까지 안착하는 재치를 발휘하기도 했다. 이어서 대타 토드 워커의 단타가 터지며 경기는 6:4로 벌어졌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서막에 불과했다. 곧바로 이어진 8회말 공격에서 말론 앤더슨의 3루타와 윌슨 베테미트의 적시타를 엮어 1점을 뽑아내며 6:5 턱밑까지 파드레스를 추격한 것이다. 샌디에고의 마무리 트레보 호프만이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기는 했지만, 다저스의 놀라운 추격을 감안하면 샌디에고도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는 분위기였다.

다저스 덕아웃 역시 이를 모를 리 없었다. 한점 뒤진 상태에서 마운드를 이어 받은 장본인은 다름 아닌 마무리 투수 사이토 타카시. 이 경기를 꼭 잡겠다는 그래디 리틀 감독의 의지가 반영된 기용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기용은 사이토가 스스로 무너지는 악수가 되고야 말았다. 애드리안 곤잘레스에게 안타를 내주며 흔들리기 시작한 사이토는 2루타와 폭투, 희생플라이를 묶어 상대에게 2점을 허용한 뒤 조쉬 바필트에게 적시타를 얻어 맞으며 완전히 넉다운 돼 버렸던 것이다. 이제는 확실히 승부가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때 기적이 벌어졌다. 9회말 선두 타자로 나온 제프 켄트와 J.D. 드류가 백투백 홈런을 날린 것이다. 샌디에고는 즉각 마무리 트레보 호프만을 올려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한번 불 붙은 다저스 타자들의 방망이는 쉽게 식을 줄을 몰랐다. 러셀 말린과 말론 앤더슨이 계속해서 바뀐 투수를 상대로 계속해 백투백투백투백 홈런을 작렬시킨 것이다. 그렇게 경기는 다시 9:9 동점이 됐다.




하지만 역접(逆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기적같은 4연 타석 홈런에 긴장이 풀렸던 걸까? 아니면 파드레스 타자들의 집중력이 무서운 걸까? 1사후 브라이언 자일스는 2루타를 치고 나가며 다시 한번 팀에 승기를 안겼다. 애드리언 곤잘레스에게는 고의사구. 병살타를 유도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폴 맥아눌티는 병살 대신 외야 플라이로 물러나며 기회를 조쉬 바드에게 넘겼다. 그리고 기대에 부응하듯 조쉬 바드는 브라이언 자일스를 홈으로 불러들이며 팀에 다시 한번 리드를 안겼다.




그러나 끝나지 않은 것은 역접만이 아니었다. 기적도 끝나지가 않았던 것이다. 케니 롭튼이 볼넷으로 걸어나가긴 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다저스의 WP는 .319에 지나지 않았다. 여전히 파드레스에게 상당히 유리한 고지였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루디 시에네스의 5구를 노린 노마 가르시아 파라의 타구는 결국 펜스를 넘어가고야 말았다. 11:10, 다저스의 승리였다.




이 경기의 재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하나 있다. 9회말 공격을 지켜보던 한 다저스 팬이 게임데이 채팅창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남긴 것이다.

Gameday seems to be broke. It keeps on saying every Dodger hitter is hitting a home run.
게임데이가 고장났나 봐요. 모든 다저스 타자들이 홈런을 쳤다고 나오네요.
물론, 당연히 게임 데이는 고장난 게 아니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드라마틱했을 이 경기는 연장 10회에도 드라마를 남겨두었다가 팬들에게 선사했다. 정말 대단한 경기였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前미국 대통령 케네디는 8:7을 야구에서 가장 재미있는 점수라고 말한 바 있다. 그것이 그 유명한 케네디 스코어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게임 데이 스코어는 바로 11:10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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