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지난달 13일 안방 SSG전에서 삼진 판정을 받은 뒤 구명환 구심(왼쪽)에게 항의하는 LG 김현수. 동아일보DB

선두 SSG와 안방 팀 LG가 맞붙은 지난달 13일 프로야구 잠실 경기.

 

SSG가 2-0으로 앞선 5회말 2사 만루 상황에서 LG 김현수(34)가 타석에 들어왔습니다.

 

안타 한 방이면 최소 동점까지 기대할 수 있던 상황.

 

풀카운트 상황에서 SSG 선발 오원석(21)은 슬라이더를 선택했습니다.

 

김현수는 이 공이 '볼'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흘려 보냈지만 구명환(36) 구심 판단은 달랐습니다.

 

지난달 13일 안방 SSG전에서 5회말 삼진 판정을 받고 있는 LG 김현수. KBSN 중계 화면 캡처

TV 중계 화면에 나온 네모 상자를 기준으로 하면 김현수 판단이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게다가 이 블로그에 14년 전 썼던 것처럼 김현수는 정말 선구안이 빼어난 타자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구 심판은 스트라이크 판정 때문에 비판에 자주 시달리는 축에 속합니다. 

 

단, TV 중계 화면에 나오는 네모는 홈플레이트 맨 앞 면을 기준으로 그린 2차원 공간입니다.

 

반면 야구 규칙은 홈플레이트 위 상공 전체 그러니까 3차원적으로 스트라이크 존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스트라이크 존은 2차원이 아니라 3차원입니다. 트위터 캡처

이런 이유로 세이버메트릭스(야구 통계학)에서는 스트라이크 존을 2차원으로 '압축'할 때 50%를 기준으로 삼는 게 '관례'입니다.

 

특정 코스로 들어왔을 때 50% 이상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는 영역을 스크라이크 존이라고 '간주'하는 겁니다.

 

'신동아' 3월호에 쓴 '베이스볼 비키니'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간단한 머신러닝 모형을 만들면 이런 확률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김현수가 삼진 판정을 받은 공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을 확률은 57.1%였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한 공이라고 할 수 있던 겁니다.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스트라이크 존 정상화' 연수를 진행 중인 프로야구 심판진. 동아일보DB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스트라이크 존 정상화'를 표방했습니다.

 

지난해까지는 높은 쪽 코스에는 구심 손이 잘 올라가지 않았는데 올해부터는 스트라이크 존 상한선을 높이겠다는 취지였습니다.

 

역시 '베이스볼 비키니'를 통해 이 내용을 다루면서 "'스트라이크 존을 넓히자'고 외친다면 실제로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졌다"고 썼습니다.

 

당연히 올해도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졌습니다.

 

지난해 스트라이크 존과 1일 경기까지 올해  스트라이크 존을 비교하면 아래 그림처럼 나타납니다.

 

이 그림을 보면 일단 왼손 타자와 오른손 타자 모두 스트라이크 존이 위로 올라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왼손 타자는 바깥쪽(3루쪽) 낮은 코스로도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졌다는 게 눈에 띕니다.

 

이 그림에서 색을 칠한 네모 하나가 대략 야구공 하나 크기입니다.

 

왼손 타자는 야구공 8개, 오른손 타자는 야구공 7개 정도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졌습니다.

 

인간 심판은 일반적인 팬들 생각보다 스트라이크 존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모릅니다.

 

영화 '백 투 더 퓨처' 포스터

단, 심판은 인간이고, 인간은 '회귀의 동물'이기에 이 '조정 스트라이크 존'은 시간이 흐르면서 원래대로 돌아가곤 합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스트라이크 존을 조정하겠다고 밝힌 건 이번이 벌써 아홉 번째입니다.

 

그러니까 스크라이크 존은 처음부터 실재하는 게 아니라 바꾸고 또 바꾸고 또 바꾸면서 찾아가는 어떤 '이데아'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니 언젠가부터 위쪽 코스에 구심 손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해도 놀라지 마세요.

 

가까운 미래에 다시 한 번 스트라이크 존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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