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존경하는 (전직) 기자 선배께서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남기셨습니다.

 

 

요컨대 올해 한화는 타율/출루율/장타력(장타율)이 다 낮은데 어떻게 BABIP는 높을 수가 있느냐는 것.

 

실제로 한화는 29일 현재 프로야구 10개 구단 가운데 타율은 공동 8위, 출루율을 10위, 장타력은 9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29일 현재 프로야구 타격 기록
 팀  타율  출루율  장타력  BABIP
 한화  .250  .321  .360  .317
 KIA  .273  .351  .403  .316
 삼성  .262  .328  .369  .313
 KT  .256  .333  .375  .311
 LG  .274  .349  .411  .311
 SSG  .258  .339  .394  .306
 롯데  .260  .322  .377  .304
 NC  .256  .334  .376  .298
 키움  .250  .333  .362  .296
 두산  .249  .323  .353  .292

 

올해 한화가 확실히 이상하기는 합니다.

 

한화는 타율(8위) 출루율(10위) 장타율(9위) 순위를 모두 더하면 27이 나옵니다. 이를 팀 숫자(10개)로 나누면 2.70입니다.

 

BABIP 1위 팀 가운데 올해 한화 다음으로 이 숫자가 컸던 건 △2016년 롯데 1.90 △2003년 두산 1.75 △2014년 SK(현 SSG) 1.67 △2005년 두산 1.62 순서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한화는 어쩌다 이렇게 이상한 성적표를 받게 된 걸까요?

 

현재 한화 선수 가운데 BABIP가 가장 높은 노시환(.377). 동아일보DB

기본 타격 기록이 전부 다 나쁜데 BABIP만 유독 높은 건 확실히 재미있는 일입니다.

 

수비 팀 관점에서 BABIP와 가장 관계가 깊은 기록은 범타처리율(DER·Defensive Efficiency Ratio)입니다.

 

DER를 가장 쉽게 추정하려면 그냥 1(=100%)에서 BABIP을 빼면 됩니다.

 

따라서 어떤 팀이 BABIP이 높다는 건 이 팀 타선이 때린 타구를 상대팀 수비수가 처리하는 데 애를 먹는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한화 타자가 때린 타구를 상대 팀 수비수가 처리해 아웃 카운트를 올린 건 2022번으로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적었습니다.

 

그런데 그래프를 자세히 보시면 이 인플레이 아웃 개수와 BABIP 순위가 잘 맞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건 사실 당연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누적 기록과 비율 기록 차이니까요.

 

그리고 BABIP가 비율 기록이라는 건 생각보다 중요한 정보인지 모릅니다.

 

BABIP는 보통 이렇게 생긴 공식에 △타수 △안타 △홈런 △삼진 △희생플라이 데이터를 넣어서 계산합니다.

 

모든 분수가 그런 것처럼 BABIP도 분자에 있는 '안타 - 홈런'이 커지면 값이 올라갑니다.

 

거꾸로 분모에 있는 '타수 - 홈런 - 삼진 + 희생플라이'가 작아져도 BABIP이 역시 올라갑니다.

 

그러면 어떤 기록이 BABIP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까요?

 

간단한 '랜덤 포레스트' 모형을 만들어 계산해 보면 역시나 안타가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다음이 삼진입니다. 안타가 100만큼 중요하다고 할 때 삼진은 60.3만큼 중요합니다.

 

나머지 세 기록은 20이 되지 않으니까 삼진이 끼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삼진이 늘어나면 공식에서 분모가 줄어들어 BABIP가 올라가게 됩니다.

 

이날 현재 전체 374타석 가운데 25.9%(97타석)가 삼진인 한화 하주석. 동아일보DB

올해 프로야구 전체 4만4132타석 가운데 18.7%인 8249타석이 삼진으로 끝났습니다.

 

한화는 전체 4307타석 가운데 1002타석으로 삼진 비율이 23.3%에 달합니다.

 

한화 타선은 리그 평균과 비교할 때 24.5% 삼진을 더 많이 당하고 있는 겁니다.

 

리그 평균과 비교할 때 올해 한화보다 삼진을 많이 당한 건 지난해 한화(28.7%) 그리고 1987년 청보(27.0%)뿐입니다.

 

지난해 한화는 타석 대비 안타 비율(20.2%)은 최하위 홈런 비율(1.5%)은 9위였습니다.

 

안타를 워낙 못 치다 보니 삼진을 저렇게 많이 당하고도 BABIP(.306)는 5위에 그쳤습니다.

 

올해는 안타 비율(22.2%)을 리그 평균(22.8%) 97.4% 수준까지 끌어올린데다 역대급으로 삼진을 많이 당하면서 BABIP 선두에 오른 겁니다.

 

방망이에 공을 못 맞혀서 그렇지 일단 맞으면 안타가 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겁니다.

 

올해 한화 타자 가운데 가장 삼진율(14.2%)이 낮은 최재훈. 동아일보DB

만약 올해 한화 타선이 다른 기록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삼진만 리그 평균 수준이었다면 BABIP은 .296(8위)으로 떨어집니다.

 

BABIP가 높은 게 꼭 팀 또는 타자가 무조건 잘 치고 있다는 뜻은 아니라는 얘기가 됩니다.

 

거꾸로 최재훈(33)은 358타석에서 삼진을 51개(14.2%)밖에 당하지 않았지만 .219/.327/.286이 전부입니다.

 

그러니 최재훈은 삼진만 적다고 좋은 타자가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리그 홈런 선두(32개) 박병호. KT 제공

그래서 어떤 기록이 같다고 두 선수(팀)가 똑같은 레벨이라고 무조건 단정 짓기도 쉽지 않습니다.

 

리그 홈런 선두 박병호(36)가 이번 시즌 448타석에서 남긴 BABIP가 .297입니다.

 

한화가 삼진을 줄여서 BABIP .296인 타선을 꾸렸다면 정말 박병호 같은 위압감을 안길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어떤 기록을 근거로 어떤 평가를 내리기 전에는 항상 '이 기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하고 꼭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댓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