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이영재 2루심(가운데)을 비롯해 7일 사직 경기 진행을 맡은 심판진. 부산=뉴스1

7일 프로야구 사직 경기에서 두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심판원의 방해'를 선언해야 하는 전형적인 상황에서 이영재(55) 심판은 '볼 인 플레이' 판정을 내린 겁니다.

 

이 오심 때문에 롯데는 내주지 않아도 될 점수를 내줘야 했습니다.

 

웃긴 건 '절반'은 또 규칙대로 처리를 했다는 점입니다.

 

2023년 프로야구 롯데 안방 개막전 선발을 맡은 한현희. 롯데 제공

상황이 벌어진 건 KT가 2-0으로 앞서 있던 4회초 2사 1, 3루 상황이었습니다.

 

KT 9번 타자 김상수(33)가 롯데 선발 한현희(30)가 던진 초구를 받아쳤습니다.

 

이 타구는 마운드 위에서 한 번 바운드한 다음 이 심판 몸에 맞았습니다.

 

이후 이 공이 좌익수와 중견수 사이로 굴러가는 동안 3루에 있던 조용호(34)는 홈을 밟았고 1루 주자 박경수(39)도 3루까지 내달렸습니다.

 

김상수가 친 공이 이영재 심판 몸에 맞는 장면. KBSN 중계화면 캡처

한국야구위원회(KBO) 공식 야구 규칙 6.01(f)[원주]②가 딱 이 상황을 심판원의 방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원주] 심판원의 방해 ①도루를 저지하려는 포수의 송구동작을 주심이 방해하였을 경우 ②타구가 야수(투수 제외)를 통과하기 전에 페어지역에서 심판원에게 닿았을 경우

 

그러니까 내야수 앞에 서 있던 심판이 공에 맞았을 때는 즉시 볼 데드를 선언하고 상황에 따라 '교통정리'를 마쳐야 합니다.

 

2016년 8월 10일(현지시간) 메이저리그 LA 에인절스-시카고 컵스 경기에서 스투 쉐어워터(40) 심판이 행동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이 심판은 세이프 판정을 내릴 때처럼 양 팔을 옆으로 뻗었습니다.

 

이건 '공이 살아 있다'는 뜻으로 외야수가 다이빙 캐치에 실패했을 때도 같은 동작을 취합니다.

 

공이 살아 있다고 '잘못' 판단했으면 조용호의 득점을 허용하는 건 물론 박경수의 3루 진루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심판진은 박경수가 2루로 돌아가야 한다고 판정했습니다.

 

박경수에게 2루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이영재 심판. KBSN 중계화면 캡처

규칙을 따랐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해야 했을지 한번 차근차근 알아보겠습니다.

 

5.05(b)(4)에 따라 '심판원의 방해'가 나왔을 때 타자는 '아웃될 염려 없이 안전하게' 1루에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일단 타자였던 김상수는 1루에 나가는 게 맞습니다.

 

이때 공식기록원은 김상수가 '안타'를 친 것으로 기록지에 적습니다.

 

이영재 심판이 타구에 맞기 전 장면. KBSN 중계화면 캡처

그러면 주자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요? 이번에는 5.06(c)(6)에 정답이 들어 있습니다.

 

(6)내야수(투수 포함)에게 닿지 않은 페어 볼이 페어지역에서 주자 또는 심판원에게 닿았을 경우 또는 내야수(투수 제외)를 통과하지 않은 페어 볼이 심판원에게 맞았을 경우 - 타자가 주자가 됨으로써 베이스를 비워줘야 하는 각 주자는 진루한다.

 

5.06(c)는 기본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볼 데드를 선언해야 하는지를 다룬 부분입니다.

 

이런 상황은 볼 데드라 주자가 원래 베이스로 지켜야 하는데 타자 주자가 1루에 들어섰으니까 이에 영향을 받는 주자는 한 칸씩 옮기라는 뜻입니다.

 

득점에 성공한 뒤 그라운드 사정을 살펴보고 있는 조용호(가운데). KBSN 중계화면 캡처

따라서 원래 1루 주자였던 박경수는 2루로 가는 게 맞습니다.

 

단, 3루 주자 조용호는 이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3루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결국 KT가 2-0으로 앞선 2사 만루 상황에서 계속 공격을 이어가는 게 규칙에 맞았던 겁니다.

 

그런데 심판이 규칙을 절반만 제대로 적용하면서 3-0에 주자 1, 2루 상황이 됐습니다.

 

이 경기 구심을 맡은 장준영 심판(왼쪽)과 이강철 KT 감독. KBSN 중계화면 캡처

재미있는 건 이 상황에서 KT는 '왜 박경수가 2루로 돌아가야 하느냐'고 항의했지만 롯데 쪽에서는 아무 어필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롯데 더그아웃에 있던 그 누구도 이 규칙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역시 41년 동안 이 팀이 두 번밖에 우승하지 못한 건 우연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 심판이 처음부터 제대로 판정했다면 이런 일은 아예 생기지도 않았겠지만 말입니다.

 

2019년 4월 19일 경기에서 볼 카운트를 착각해 삼진 판정을 내린 이영재 김판

앞서 보신 것처럼 도루 상황에서 구심이 포수 송구를 방해했을 때도 '심판원의 방해' 상황이라 각 주자는 원래 베이스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를 제외하면 심판은 그냥 '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의도치 않게) 공에 맞거나 주자 또는 야수와 충돌해도 플레이에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습니다.

 

심지어 타구가 야수 사이를 지난 다음 심판에게 맞았다면 = 심판이 내야수 뒤에 서 있었다면 '볼 인 플레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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