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아' 엘리 데라크루스(21·신시내티)가 메이저리그(MLB)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사이클링 히트와 사이클링 도루 기록을 동시에 보유한 선수가 됐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사이클링 히트(hit for the cycle)는 한 타자가 한 경기에서 단타, 2루타, 3루타, 홈런을 모두 때려내는 걸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사이클링 도루는 여기서 유래한 한국 야구팬 은어로 2루, 3루, 홈을 모두 훔치는 걸 뜻합니다.
물론 한 경기에 따로 따로 도루 기록을 남길 수도 있지만 보통은 한 이닝에 차례로 도루 세 개를 선공시켰을 때 사이클링 도루라는 표현을 씁니다.
데라크루스가 사이클링 도루에 성공한 건 8일(이하 현지시간) 밀워키 방문 경기였습니다.
이 경기에 4번 타자 겸 유격수로 선발 출장한 데라크루스는 5-5 동점이던 7회초 2사 주자 3루 상황에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상대 투수 엘비스 페게로(26)가 네 번째 공으로 던진 슬라이더를 밀어쳐 역전 적시타를 때려냈습니다.
그러고는 페게로가 다음 타자 제이크 프레일리(28)에게 두 번째 공을 던지는 틈을 노려 2루를 훔쳤습니다.
지난달 6일 MLB 데뷔전을 치른 데라크루스의 시즌 14번째 도루였습니다.
데라크루스는 2루에서 프레일리가 슬라이더에 헛스윙하는 걸 일단 한 번 지켜봤습니다.
이후 타이밍을 잡았다는 듯 다시 3루로 뛰었습니다.
밀워키 3루수 브라이언 앤더슨(30)이 베이스 커버에 들어갈 새도 없이 데라크루스는 서서 3루를 밟았습니다.
여기서 페게로가 한 번 더 빈 틈을 노출합니다.
포수 윌리엄 콘트라레스(26)에게 공을 전달 받은 뒤 느긋하게 마운드로 돌아가며 숨을 고른 겁니다.
데라크루스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홈으로 파고 들었습니다.
송구 타이밍이 낮은 데다가 방향마저 엇나가면서 데라크루스가 결국 홈까지 훔쳤습니다.
그러니까 데라크루스는 프레일리 타석 때 사이클링 도루를 성공시킨 겁니다.
이렇게 타자 한 명이 타석에 있는 동안 사이클링 도루를 성공한 건 1969년 5월 18일 로드 커루(78·당시 미네소타) 이후 데라크루스가 처음입니다.
커루는 만 24세 7개월 19일이었던 이듬해 5월 20일에는 캔자스시티를 상대로 사이클링 히트 기록도 남겼습니다.
20세기 이후에 태어난 선수가 사이클링 히트와 사이클링 도루를 동시에 기록한 건 커루가 처음이었습니다.
순위 | 이름 | 사이클링 히트 | 사이클링 도루 | 만 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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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 엘리 데라크루스 | 2023-06-23 | 2023-07-08 | 21세 5개월 27일 |
② | 로드 커루 | 1970-05-20 | 1969-05-18 | 24세 7개월 19일 |
③ | 키키 쿠일러 | 1925-06-04 | 1925-07-25 | 26세 10개월 25일 |
④ | 밥 뮤슬 | 1921-05-07 | 1927-05-16 | 30세 9개월 27일 |
⑤ | 지미 존스턴 | 1922-05-25 | 1916-09-22 | 32세 5개월 15일 |
⑥ | 폴 몰리터 | 1991-05-15 | 1987-07-26 | 34세 8개월 23일 |
⑦ | 맥스 캐리 | 1925-06-20 | 1923-08-13 | 35세 5개월 9일 |
⑧ | 호너스 와그너 | 1912-08-22 | 1902-08-13 | 38세 5개월 29일 |
그리고 19세기 출생자 가운데도 커루보다 어린 나이에 두 기록을 모두 남긴 선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21세기에 태어난 데라크루스가 만 21세 5개월 27일이던 이날 사이클링 도루에 성공하면서 53년 만에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데라크루스는 지난달 23일 안방 애틀랜타전에서 2회에 2루타, 3회에 홈런, 5회에 단타, 6회에 3루타를 치면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상태였습니다.
사이클링 히트와 사이클링 도루 사이 간격이 보름밖에 나지 않는 것도 역대 최단 기록입니다.
사실 사이클링 도루만 따져도 데라크루스보다 어린 나이에 이 기록을 남긴 건 로저스 혼스비(1896~1963) 한 명뿐입니다.
혼스비는 만 21세 2개월 6일이던 1917년 7월 3일 피츠버그 방문 경기에서 세인트루이스 소속으로 사이클링 도루에 성공했습니다.
MLB 데뷔 후 경과일 기준으로도 데라크루스(32일)의 사이클링 도루는 역대 두 번째로 빠른 속도입니다.
2011년 6월 6일 데뷔전을 치른 디 고든(35)이 25일이 지난 그해 7월 1일 경기에서 사이클링 도루에 성공한 게 MLB 역대 최단 기록입니다.
데라크루스를 MLB 승격시킨 이후 신시내티는 이날까지 23승 7패(승률 0.767)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시내티는 당시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선두였던 피츠버그에 5.5경기 뒤진 3위였지만 이제는 2위 밀워키에 2경기 앞선 지구 선두입니다.
사실 131타석에서 OPS(출루율+장타력) 0.899를 기록한 데라크루스가 리그를 '씹어먹고 있다'고 표현하기는 어딘가 부족한 게 사실.
그러나 슈퍼스타에게는 역시 기록 이상으로 팬을 즐겁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