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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지난해 12월 3일 '06-'07 시즌 NFL 13주차 경기, 쿼터백 렉스 그로스만이 이끄는 시카고 베어스는 미네소타 바이킹스에 23-13으로 승리했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그로스만은 그저 쿼터백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얼빠진 사내에 지나지 않았다.

이 경기에서 그의 쿼터백 레이팅(QB Rating)은 1.3. 지난 35년간 승리팀 쿼터백의 레이팅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였다. 그래서일까? 렉스 그로스만은 역사상 슈퍼볼에 진출한 쿼터백 가운데 가장 기량이 떨어진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시애틀 호크스戰에서 sacked된 그로스만

더구나 상대가 현역 최고의 쿼터백 페이튼 매닝이라면 확실히 상대 평가에서 불리함을 안을 수밖에 없다. 페이튼은 이번 시즌 101.0의 레이팅으로 리그 1위를 차지했다. 그로스만의 시즌 기록은 73.9. 주전 쿼터백 가운데 그보다 낮은 레이팅을 기록한 선수는 8명뿐이었다.

사실 이 기록만 놓고 보자면 그로스만에 대한 평가절하는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슈퍼볼에 진출한 쿼터백 가운데 그로스만보다 낮은 레이팅을 기록했던 선수는 '91년 덴버 브롱코스의 존 얼웨이(73.7)가 유일하다. 그 차이 역시 겨우 0.1밖에 되지 않는다.

그로스만의 이번 시즌은 한 마디로 롤러코스터였다. 위에서 확인한 것처럼 13주차 경기는 그에게 악몽이었다. 하지만 14주차 경기에서 그의 쿼터백 레이팅은 114.4로 급상승했다. 특히 이 경기 3쿼터만 놓고 보자면, 그의 기록은 158.3이나 된다. 볼링의 300점처럼 쿼터백 레이팅 158.3 또한 퍼펙트게임을 뜻하는 숫자다.

 
오더블(audible) 中인 그로스만

포스트 시즌의 레이팅을 봐도, 그로스만(75.4)이 매닝(66.8)에 앞서 있다. 무엇보다 어이없는 판단 미스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로스만에게 매닝보다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그로스만은 단 한 차례 인터셉트를 당한 데 비해, 매닝은 6차례나 상대 수비수에게 공을 빼앗겼다. 상대가 거의 공을 빼앗을 뻔한 경우 역시 그로스만은 한 번, 매닝을 6번이다. 전체적인 판단에 있어 그로스만이 좀더 현명했다는 얘기다.

게다가 수비력을 놓고 볼 때도 베어스가 콜츠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달리 말해, 인디애나폴리스 수비진이 그로스만의 실책을 유도할 확률보다 매닝이 시카고 수비진에 부담을 느낀 확률이 더 크다는 얘기다. 특히 브라이언 얼라커의 최근 활약을 생각해 보자면 더더욱 그렇다. 또한 스페셜 팀의 무게감 역시 시카고 쪽으로 쏠린다.

여기에 시카고의 공격 패턴이 대체로 러닝 게임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 역시 인디애나 콜츠의 수비진을 압박할 수밖에 없다. 러싱 수비에 있어 콜츠는 취약점을 보이고 있다. 인디애나 폴리스의 경기당 러싱 허용은 173.0야드. 물론 리그에서 가장 러싱 수비에 취약한 팀이 바로 콜츠다.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의 토니 던지 감독은 "풋볼 경기의 85%는 승리 팀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패배 팀이 지는 것"이라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기록상 두 팀의 경기는 베어스의 다소 우위인 게 사실이다. 따라서 베어스가 이 경기에서 지지 않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쿼터백 렉스 그로스만의 심리적 안정이다. 제 아무리 앞선 전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필드의 야전 사령관이 무너져 버리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카고 시내에 걸린 그로스만의 RBK광고

렉스 그로스만은 인디애나州에서 태어나 자랐다. 어릴 적 그의 꿈은 콜츠의 주전 러닝백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고향 팀의 패배를 위해 뛰어야 한다. 그것도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쿼터백을 상대로 말이다.

그는 슈퍼볼 경기가 열리는 마이애미와도 인연이 깊다. 본인은 물론 아버지와 할아버지 모두 플로리다大에서 풋볼 선수로 뛰었기 때문이다. 특히 2001년 그는 ‘빗속의 투척(Slingin' in the Rain)’ 신화를 쓰며, 플로리다大를 전미챔피언으로 올려놓기도 했다.

과연 이 인연이 렉스 그로스만의 운명을 어디로 데려갈까? '85년 이후 팀에 첫 번째 빈스롬바르디 트로피를 안기는 주인공이 될 것인가? 아니면 자기 자신이 최고였던 필드에서 고향 팀의 우승을 지켜봐야 할 것인가? 과연 그로스만이 롤러코스터의 어느 코스를 향하고 있을지, 이번 슈퍼볼이 더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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