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탈삼진 능력은 투수를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 하지만 삼진을 많이 잡는 투수, 아니 삼진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투수에게는 거의 예외 없이 다음과 같은 주문이 쏟아진다.

'야! 맞혀 잡아! 맞혀 잡아!'

과연 맞혀 잡는는 게 삼진보다 효율적일까?

투수가 타자에게 아웃 카운트를 빼앗는 방법은 오직 두 가지뿐이다. 삼진과 맞혀 잡는 것. 삼진은 자기 힘으로, 맞혀 잡는 건 수비수에 맡기는 형태다.

야수가 타구를 '정상 처리'하려면 타구가 어떤 형태로든 페어 지역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이를 흔히 '인플레이 타구(Balls In Play, 이하 BIP)'라고 부른다. 이 타구를 아웃으로 연결한 비율을 나타내는 용어가 바로 DER(Defense Efficiency Ratio, 범타 처리 비율)이다.

그럼 맞혀 잡는 투수는 어떤 투수일까?

먼저 삼진이 적어야 한다. 탈삼진왕에게 '맞혀 잡는' 투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 또 DER이 높아야 한다. 삼진도 없고, 범타 유도도 못하는 투수는 그저 '3류 투수'일 뿐이다. 따라서 삼진은 적고, DER은 높은 투수가 바로 '맞혀 잡는' 투수가 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있다. 프로 원년에 투수들은 상대 타자 9.5명당 1개의 삼진을 기록했다. 지난 시즌에는 6.5명당 1개꼴이었고 2002년에는 5.6명당 하나였다. 2002년에 5.6 타자당 삼진 한 개를 잡는 투수는 그저 평균이지만, 원년에는 특급이 되는 셈.

이를 가장 간단히 보정하려면 리그 평균과 차이를 백분율(K%+)로 나타내면 된다.

예를 들어 2002년에 뛴 투수가 5.6명당 탈삼진 하나를 잡았다면 그의 K%+는 리그 평균을 나타내는 100(=5.6/5.6×100)이다. 마찬가지 기록이 1982년에 나왔다면 K%+는 170(≒9.5/5.6×100)이 된다. 이는 리그 평균보다 70% 뛰어난 탈삼진 능력을 보였다는 뜻이다.

DER도 시대에 따라 변하기는 마찬가지. 같은 방법으로 유사한 기록(DER+)을 얻어낼 수 있다. 이 계산법을 통해 나온 결과는 100보다 높으면 뛰어나고 반대면 평균 이하다.

이제 우리는 좀 더 '정확하게' 맞혀 잡는 투수를 정의할 수 있다. K%+는 100보다 작고, DER+는 100보다 큰 투수. 이 기준을 충족시키는 투수가 바로 맞혀 잡는 투수다. 이 선수들은 아래 그래프 오른쪽 하단에 자리 잡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프에 등장한 세 명 말고도 어떤 선수들이 맞혀 잡는'투수에 포함됐는지 짐작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단 탈삼진 한 개도 없이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개막전의 사나이' 장호연, 인터벌과 '흑마구'의 황제 성준, 여전히 리그 정상급 에이스인 롯데 '민한신' 손민한 등이 바로 이 타입에 속한다.

이들 바로 위쪽에 가장 흥미로운 이름이 모여있다.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 투수로 손꼽히는 선동열을 비롯 '철가면' 오승환, '애니콜' 임창용, 쌍방울 마운드를 홀로 이끈 조규제까지 모두가 내로라하는 이름이다. 그밖에 전성기 송진우나 10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에 빛나는 이강철도  그룹에 속한다.

이는 사실 너무도 당연한 결과. 가장 뛰어난 투수란 삼진도 많이 잡고 범타 유도도 잘하는 투수일 테니 말이다. 최동원도 이 그룹에 속하고 구대성, 한용덕, 정민철, 최창호, 정민태, 김용수, 이상훈 등은 모두 이 그룹에서 자기 이름을 찾을 수 있다. 그러니까 바로 이 그룹이야 말로 특급 투수들의 보금자리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들과 비교할 때 '맞혀 잡는' 투수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다음 시간에는 각 그룹별로 기록에서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 82년부터 2006년까지 규정 이닝의 50% 이상을 소화한 투수를 대상으로 함



댓글, 16

  •  댓글  수정/삭제 기다림의 미학
    2007.08.12 03:17

    지극히 개인적이고 조금 무식한 생각이라 하실지는 모르지만요...ㅡ.ㅡ;;

    통계적 수치의 신뢰도를 의심하는건 아니지만 회기식의 설명력만으로 투수의 관여도가 낮다는걸 충분히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또다른 무언가가 고려되야 하지 않을가 싶은..짧은 생각입니다 ㅜㅡ

    •  수정/삭제 kini
      2007.08.12 12:34 신고

      사실 투수가 허용하는 타구의 성질과 DER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이 어느 정도 증명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초기 DIPS이론에 대한 개량이 이뤄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그런 자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입니다. 그리고 타구의 질에 대한 투수의 관여도 역시 '능력'이라고 할 정도는 못 된다는 게 밝혀지고 있습니다.

      아직 연구가 더 필요하지만, DIPS의 아이디어 자체는 인정받고 있는 형편이죠.

  •  댓글  수정/삭제 기다림의 미학
    2007.08.12 13:48

    네 저도 최근에야 이런 메트릭에 대해 급(?) 관심을 타기 시작했지만 충분히 매력있는 이론이죠

    다만 두 변수의 상관도 ssr과 sst의 관계를 통계적으로 규명한 회기분석 그래프의 내용해석에 있어서 그 높고 낮음을 전적인 상관관계로 보는데는 무리가 있을듯 생각합니다 실제로 통계학에서 분산분포와 상호연관성의 해석 그리고 그 신뢰도에 대해 최근 기존과 다른 약간은 회의적인 주장도 조금씩 나오고 있고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가 꽤 많으니까요
    (각 변수의 변동식에 있어 수학적 통계와 실체적 통계의 접근성이 떨어질수 있다는,,,,)

    바로 그런 생각과 더불어 투수의 관여도가 낮다(표현에따라 현저히 낮다)라고 단정하는것이 조금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짧은 생각이나마 어제 댓글은 단것이었습니다 ^^

    p. 어제 잠깐 달린 님의 리플(아..생각해보니 어제가 아니군요 -_-;;)을 보고 생각했는데
    얼마전 님이 말씀하신 지금 잠시 접어두고 있다고 하신 ,,,,세이버 매트릭에 관한 책은 언제쯤 나오나요?? 빨리 보고 싶네요 ㅜㅡ

    •  수정/삭제 kini
      2007.08.12 14:37 신고

      그 부분이 '세이버메트릭스'의 영원한 고민이죠.

      사실 저는 야구를 위한 세이버메트릭스가 아닌 "통계학"으로서의 세이버메트릭스는 되도록 회피하는 편입니다. 그게 야구를 즐기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통계적 설명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이상, 확실히 그런 점을 무시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그리고 사실 통계학의 시작이 어느 지점인지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테고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 새벽에 달았던 댓글처럼, 열심히 구글링을 해봤지만 확실히 통계학을 이용하지 않고 DIPS 이론을 설명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되지 못하는지라 ㅡㅡ;

      더구나 최근 DIPS 이론이 타구의 질에 초점을 맞춘 상태라 초기 이론에 관해서만 계속해 언급하는 건 다소 무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괜한 걸 건드렸다니까요 ㅡㅡ;

      그리고 지금 생각난 건, 제가 논리 전개 방식을 잘못 잡아서 이해하시기가 더 힘든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좀 손 볼 필요가 있긴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그 책에 쓸 내용들을 이미 이 블로그에 거의 다 올렸습니다. 핑계지만, 책 한 권 마음 편히 쓰기에 '생활'이라는 것이 만만찮은 것인지라… 역시나 능력 부족이라는 것을 절감한 것이 가장 큰 이유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회기분석이랑 회귀분석이란 다른 건가요? ㅡㅡ; (정말 몰라서 여쭙는 겁니다.)

  •  댓글  수정/삭제 기다림의 미학
    2007.08.12 15:04

    회기분석이 바로 각각의 변수의 상관성을 규명하는 통계학의 바로 그 회귀분석입니다

    흔히 말하는 변수간의 관계나 상관성을 규명하는 통계적의미의 회기 혹은 회귀는 모두 regression analysis에 해당하는 회귀분석을 말합니다 ;;;;

    •  수정/삭제 kini
      2007.08.12 15:28 신고

      늘 회귀분석이라보만 봐 와서요 ^^;
      새로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댓글  수정/삭제 도파민
    2007.08.12 22:49

    저도 삼진을 많이 잡는 투수와 이외의 투수로 구분을해서 투수 형태와 DER과 상관성이 없다고 해서 투구유형과 DER사이에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하는건 조금 허점이 있을수 있다고 봅니다.
    표본의 조건 사이에 독립성이 좀 떨어져 보인다고나 할까... 삼진을 잘 잡지 못한다고 맞혀 잡는다고 인식하기는 어렵다고 해야 할까요.
    땅볼/뜬공/라이너/삼진의 비율을 같이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되네요.
    (비거리/타구속도를 넣고 싶지만 그런 기록 자료는 구하기도 어렵고 정리하기도 어려운 자료라 감히 생각하기도 어렵고...)
    개인적으로 맞혀 잡는 투수의 이상적인 요건이라면 삼진은 적지만 땅볼유도가 많은 투수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실상은 전혀 상관이 없을것도 같고. 아무튼 다음편 기대하고 있겟습니다.^^

    •  수정/삭제 kini
      2007.08.12 23:55 신고

      선수들의 상세 기록을 먼저 보여드리는 편이 이해가 편했을 텐데 제가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MLB 자료이기는 하지만 뜬공과 땅볼은 기본적으로 모두 75% 가량 아웃으로 처리됩니다. 라인드라이브의 경우에는 거꾸로 75%가 안타죠.

      그런데 라인드라이브를 허용하는 것은 투수의 통제를 벗어났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최신 이론에서는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올해는 BP.com 결재를 안해서 -_-;)

      그래서 삼진을 기준으로 삼았는데, 무리가 있다는 점은 저 역시 인정합니다. 이 난관을 어떻게 풀어야할지 정말 괜한 것을 건드렸군요 ㅡㅡ;

  •  댓글  수정/삭제 Anakin
    2007.09.01 19:50

    DER과는 좀 다른이야기지만, 삼진을 많이 잡는 투수가 맞춰잡는 투수보다 공을 더 많이 던지는건 아니라는 칼럼을 얼마전에 본적이 있습니다.

    타자들이 매번 초구를 쳐주는것도 아니고, 삼진을 잡지 못하면 공이 계속 인플레이 되면서 안타를 맞고 그러면서 더 많은 타자를 상대하게 되어 결국 투구수 차이는 무시해도 될정도이다 라는거였죠. 투구수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스탯은 삼진이 아니라 볼넷이라는 아주 간단한 진리를 설명하더군여.

    암튼 보로스 맥크라켄이 세상에 발표한대로... 결국 좋은 투수는 삼진을 많이 잡고, 볼넷을 적게 내주고, 홈런을 적게 맞는 투수인데 맞춰잡는 투수는 따로 맞춰잡는 능력이 있는게 아니라 그냥 삼진을 많이 잡는게 아니라 볼넷을 더 적게 내주고, 홈런을 적게 맞는 투수라고 생각되네요.

  •  댓글  수정/삭제 archmond
    2007.09.03 11:41 신고

    어렵군요.. 역시 수학의 세계란.

  •  댓글  수정/삭제 내사랑매니
    2007.09.03 22:32

    키니님 흥미로운 글 잘 읽고 갑니다^^

  •  댓글  수정/삭제 라이언
    2008.04.11 11:38

    중간에..

    야수가 타구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페어 지역 안'으로 타구가 들어와야 한다.

    는 아닌거 같군요. 그라운드라고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파울 지역도 종종 아웃이 되니까요.

    •  수정/삭제 kini
      2008.04.14 21:55 신고

      글 전체의 맥락에서 보면 위에 쓴 표현이 맞는데, 라이언 님의 지적 역시 또 분명히 맞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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