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롯데 주형광이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시즌이 끝나면 팀별로 제법 많은 숫자의 선수들이 유니폼을 벗는다.

이 가운데는 어지간한 열혈 팬이 아니고서는 그런 선수가 존재했는지조차 모르는 선수들도 다수다. 그런 의미에서 퇴장이 쓸쓸하게 느껴지는 선수는 어쩌면 행운아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그래도 주형광은 아쉽다.

"10년 연속 10승할 줄 알았다"는 롯데 팬들의 아쉬움이 아니더라도 우리 프로야구 역사의 한 휙을 그은 선수가 이렇게 빨리 사라진다는 건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겨우 그의 나이 만 서른 하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엔 너무 이른 나이다.

주형광의 조로(早老)에 대해 야구팬들은 일반적으로 혹사라는 낱말을 떠올린다. 한 야구 기자가 주형광을 일컬어 "'형광등'처럼 빛난 에이스"라 부른 것도 그런 의미에서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주형광의 프로 인생을 정말 '형광등'에 비유해도 좋은 것일까?

아니 질문을 바꿔보자. 과연 투수의 전성기란 어느 정도나 지속되는 것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먼저 전성기란 무엇인지를 한번 정의해보자.

• 결국 선수가 은퇴하고 나면 우리가 선수를 평가하는 척도는 그 선수가 남긴 평균적인 성적이다. 물론 엄밀함이라는 의미에서는 최전성기만 놓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이는 너무 가혹한 잣대가 아닐까?

• 그래서 기준을 조금 낮춰보자. 자기 커리어 평균의 70% 정도 성적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 정도까지는 전성기였다고 해주자. 조금 유연한 잣대로 선수들을 평가해 보자는 뜻이다.

• 조사 대상에 포함된 선수들은 3년 이상 활약했고, 해당 부분 누적 기록 및 평균 기록이 상위 100위 안에 드는 선수들이다. 해당 부분 두 가지는 스터프RSAA다.
이 정도로 유연한(?) 기준을 적용했을 때 선수들의 전성기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분포를 나타낸다.
3년에서 7년 사이에 전체 투수의 80%가 몰려 있다. 3~5년만 해도 절반을 넘는 56%나 된다. 반면 8년 이상 전성기를 유지한 선수는 겨우 12.2%밖에 되지 않는다. 수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투수의 평균 전성기는 4.6년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건 가장 많은 고졸 투수의 전성기가 7년 지속되는 데 비해 대졸 투수는 그 기간이 4년 정도로 3년쯤 짧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1)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프로에 들어오는 선수들의 기량이 더 뛰어나거나 2) 투수는 결국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기량이 쇠퇴하고 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정답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사실 고졸 투수는 커리어 평균 스터프 11 정도를 기록하는데 비해 대졸 선수들은 12를 기록한다. 거의 차이가 없거나 있다고 해도 오히려 대졸 자원이 더 우수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1)은 폐기되는 편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럼 정답은 2)일까? 어쩌면 Stuff~님의 주장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KIA에서 은퇴한 이강철처럼 선발 투수로서의 생명이 끝난 후 불펜에서 또 한번의 전성기를 맞이한 선수도 있으니 성급한 단정은 삼가야 할 것 같다. 불펜 시절에도 이강철은 분명 수준급 투수였다.

다시 주형광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주형광은 데뷔 이후 7년간 최고의 주가를 올렸다. 그리고 그 이후 7년은 반 쯤 잊혀진 존재로 지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슬프지만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주형광이 '형광등'에 비유될 만큼 짧은 야구 인생을 살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 말이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삼파장 램프'의 수명이 너무 짧았다도 푸념하는 것 정도에서 그쳐야 할 모양이다.

주형광이라면 당연히 10년 이상 아니 1%안에 드는 투수가 될 것이라고 정말 너무 굳게 믿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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