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제가 응원하는 현대의 각종 7위 기록입니다.

중간순위 7위
팀 방어율 7위
팀 볼넷허용 7위
팀 실책 7위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팀 홈런1위

확인할 열의도 안 남아 있지만, 확실히 예년보다 희생번트 시도는 줄었을 겁니다. 김재박 감독 말마따나 한두 점으로 상대를 막기엔 버거운 게 사실이고, 이제 홈런이 아니면 점수를 내는 방법이 전무한 것만 같은 기분입니다. 아, 심판의 오심(?)이 있으면 발로도 가능하긴 했네요.

지난번에 어떤 글에도 썼지만, 사실 이게 태평양의 성적이라면 목청껏 응원할 텐데요. 이제 어느덧 현대는 태평양과 함께 한 세월을 넘어, 우리 안에 자리 잡았습니다. 벌써 10년차.

사실, 그 동안 현대는 막강한 모습을 보여줬던 게 사실입니다. 해태를 제외하고는 최다 회수 한국 시리즈 제패, 그리고 또 해태와 유이한 한국시리즈 연패팀.

그럼에도 인기 순위에 있어선 당당히(!) 최하위를 다투고 있죠. 어떻게 이런 팀이 이렇게 인기가 없나, 싶을 정도인 게 사실입니다. 제 아무리 실력과 인기는 비례하는 게 아니라지만,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日本人 친구와 함께 갔던 2000년 두산과의 한국 시리즈, 사상 역대 최소 PO 관중이었습니다. 그 전에는 LG팬인 선배, 일본인 친구, 이렇게 셋이서 두산/LG 플레이오프도 보러 갔더랬습니다. 잠실에서 심정수의 9회 2아웃 홈런 한방, 또 연장전 홈런. 노란 수건을 들고 열광적으로 응원하던,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반해, 한국 시리즈도 꼭 보고 싶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일본에서 고시엔 근처(?)에 까지 갔던 친구라 야구를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참 관중수, 정말 할 말이 없게 만들더군요 ^^; 시범 경기보다 조금 더 많았을까요? 7차전에 데려가는 건데 그랬습니다.

에구구, 성적이 그렇게 좋을 때도 없던 팬이 지금 이 성적에 더 생겨날 리는 없으니, 신세 한탄은 그만하겠습니다. 그저, ‘용병’이라 불리는 선수에게 깊은 애정을 쏟고 그 선수의 퇴출을 저지하려 하고, 심지어 이제 응원을 그만두겠다는 말까지 들리는 팀들의 두터운 팬층이 부려워 그랬습니다. 용병을 선정하는 현대 프런트의 안목은 매우 높게 사지만, 장수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

자,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현대 팬 여러분 힘 냅시다! 이게 사실 이 글에서 하고 싶은 유일한 한마디입니다. 도무지 힘이 나지 않겠지만, 야구는 야구고 우리는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사실은, 야구가 살게 해주면 좋을 텐데, 참 그게 참...

얼마나 암울한지 그래도 한번 알아보시겠습니까? 시즌이 시작한 이후, 어제 현재까지 1주일 단위로 순위 변동을 점검해 보겠습니다.



4위 이상으로 올라간 적이 없습니다. 5월말, 6월초에는 사실 다소 희망적인 생각을 가졌던 것도 사실인데, 그 이후로 몰락해 가는 걸 보고 있자면, 참 ^^;

그럼 어두운 현실을 확인했으니, 벗어나 봅시다. 현실의 암울함을 덜어주는 방법은, 개인적으로 세 가지가 있다고 행각합니다. 첫째, 희망찬 미래를 떠올린다. 둘째, 좋았던 과거의 추억에 젖는다. 셋째, 현실로부터 도피한다 -_-

많은 분들이 셋째를 택하실 거라고 봅니다. 그게 정신 건강에는 매우 유익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야구를 안 볼 수는 있어도, 응원하는 팀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언젠가 자기도 모르게, 어쩔 수 없이, 또 야구를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그럼 용솟음치는 혈압을 억누르라 애꿎은 우리의 위장과 간장만 참이슬의 점령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니코틴의 재림도 무시하지 못하겠죠.

희망찬 미래라? 사실 현대에겐 희망찬 미래가 없습니다. 당장 연고지 문제부터 꼬인 상황에서 도대체 무엇을 해야할지 모를 지경입니다. 저도 1차 우선 지명권을 놓고 프런트진 실컷 씹어보고 칭찬도 해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용병 잘 뽑는 능력, 그리고 선수들 키워내는 능력. 군대 간 선수들이 돌아올 날들. 네, 이런 것들로 여태 버텨온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제 뭐랄까 근본적인 뿌리 없이 버티기는 확실히 벅차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코칭 스탭이 언제까지 여기 남아줄까요?

그래서, 제게 요즘 위안이 되는 건 과거뿐입니다. 이미 확고하게 굳어져서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견고한 시간. 그럼 지난 10년간 현대가 이룩해 놓은 것들을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지난 10년간 국내 8개팀의 통산 승률입니다.



비록 총승수에서는 삼성이 685승으로, 현대의 655승보다 3승이 많습니다만, 무승부가 현대쪽이 많은 관계로 승률은 삼성에 앞서 1위입니다. 실로 자랑스러운 기록이 아닐 수 없습니다 -_-v 이기는 야구는 못했을지언정, 지지 않는 야구의 모습은 지난 10년간 유지해 왔다는 생각입니다. 1) 선두 타자 출루 = 희생번트, 2) 투수왕국. 이 두 가지 이미지로 이런 야구를 구현했다고, 섣불리 추측해 봅니다. 사실 뭐 그랬죠 ^^; 그럼 이런 승률을 올리기까지 꾸준했느냐?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이어서, 현대가 ‘96년 리그에 뛰어든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승률 및 순위입니다.



부침(浮沈)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처음엔 한 해 걸러 롤러코스터 놀이를 하더니, 짝수마다 우승을 해줄 거라는 현대 팬만의 희망을 무참히 깨버린 2002년, 2001년에 이어 저조한(?) 성적을 올린 이후, 2003-2004 2연패. 주기가 2년으로 늘어난 모양입니다. 그리고 어제 현재까지 중간 순위 7위. 이번 시즌은 사실 이대로 마칠 것 같습니다. 희망이 안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이제부터 제가 할 얘기는 전부 터무니가 전혀 없어도 이해해 주세요. -_-) 2년 정도 더 침체기에 있다가, 다시 군 입대 선수들 복귀하고 선수들 추스르면 다시 2년간 혹은 3년간의 전성기가 올 거라고 믿습니다. (뭐랩니까?)

그러니까 이대로는 정말이지 희망과 해답이 보이질 않는다는 얘깁니다. 현실로 돌아오기 싫었지만, 결국 이 시간에 살고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요. 정말 너무 잘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겨우 한 해 밑바닥에 있다고 섣불리 지치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으로 버텨 보자는 뜻입니다.

올해는 확실히 가을에 야구할 일 없을 겁니다. 어쩌면 이제 가을에 야구 하지 않기를 바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제 가을에는 좀 야구를 그만보고 싶은, 건방진 생각마저 듭니다. 지난 10년간 가을야구 출전팀 명단입니다.



'97, '99년 빼고 매번 가을에 야구하느라, 팀 전체가 피로가 누적된 모양입니다. 게다가 가장 늦게까지 야구한 게, 10년간 다섯 번. 더구나 지난 2년간 가장 추울 때까지 야구했습니다. 지칠 만도 합니다. 겨울에 휴식기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보고 싶다는 뜻입니다. ㅠㅠ '98년에도 우승하고 '99년에 6위 했습니다. -_- 2연패 했으니 8위해도 봐줍시다 ㅡ,.ㅡ

그러니, 올해는 지난 10년간 가을에 저희보다 적게 야구한 팀들, 실컷 야구하게 내버려 둡시다. 올해도 부족하다면, 내년까지 기회를 줍시다. 그래도 모자란다고 말씀하신다면, 그 다음해에도 내어 드리리이다. -_-v

그래도, 기억합시다. 그리고 힘을 냅시다. 누가 뭐래도, 올해 한국 시리즈가 열리기 전까지 우리는 디펜딩 챔피언입니다. 지난 2년간 리그를 지배한 다이너스티를 응원하는 팬들입니다. 제가 올해 승률 배경으로 챔피언 엠블렘을 선정했던 건 그런 까닭입니다. 그러니까, 당분간은 지난 10년만 생각합시다. 아니, 2003 - 2004년이라고 착각하며 응원합시다. -_-
그런데, 이게 디펜딩 챔피언의 모습이라고? 문제를 찾기보다 문제 아닌 걸 찾는 게 더 빠른 이 모습이 말입니까?

나가서 담배 한대 피우겠습니다. 오늘 저녁엔 야구를 보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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