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05 시즌 7월 26일 롯데의 광주 원정 경기, 전국 야구팬들이 한 투수의 일구일구에 정신을 집중했다. 주인공은 고졸 2년차 장원준 선수, 9회말 1아웃까지 노히트 노런. 타석에는 기아의 자존심 이종범 선수가 들어섰다. 1루쪽으로 날아간 강습 타구, 라이온 선수가 몸을 날려 멋지게 공을 잡아냈지만 투수의 1루 커버가 늦었다. 그렇게 리그 최연소 기록으로 남았을지 모를 노히트 노런은 사라져 버렸다.

장원준은 8월 28일 두산 원정 경기 때도 7회까지 노히트 경기를 펼치며 자기 가능성을 멋지게 증명해 보였다. 롯데 팬들에게는 주형광 선수 이후 오랜만에 가슴 설레게 하는 특급 좌완 선발 유망주. 리그 전체를 보더라도 송진우, 이상훈, 구대성 이후 도미넌트한 좌완 투수가 부족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장원준 선수의 성장은 분명 반길 만한 일이다.

지난 시즌 장원준 선수 모습을 단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편차'일 것이다. 잘 던진 날과 그렇지 못한 날의 차이가 그만큼 컸다는 얘기. 물론 승리는 투수만의 역량으로 얻을 수 있는 기록은 아니다. 하지만 '05 시즌 선발 투수들이 승리를 챙겼을 때 방어율은 1.84, 그렇지 못할 땐 6.07이었다. 그러니까 투수들은 승리를 챙긴 날 제법 큰 차이로 더 잘 던진다는 것이다.

장원준 선수는 이 차이가 더욱 컸다. 장 선수는 이번 시즌 모두 20차례 선발로 등판했다. 승리를 챙긴 5경기 방어율은 1.35, 그렇지 못한 경기는 7.17이었다. 이길 때는 경기당 평균 8이닝을 던졌지만, 나머지 경기에서는 평균 4회를 채우지 못했다. 잘 던질 때는 정말 특급 투수였고, 못 던질 때는 평균보다도 훨씬 떨어졌다는 뜻이다.

빌 제임스가 만든 Game Score를 통해 장원준 선수의 선발 등판 성적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그래프에 60(1군 복귀)로 표시된 지점은 7월 13일 LG와의 잠실 경기. 확실히 2군에서 최계훈 코치 지도를 받은 효과가 나타나는 듯 했다. 하지만 다음 삼성 경기에선 5회를 마치지 못하고 마운드에서 물러났다. 바로 그 다음 광주 경기에서는 다시 그는 도미넌스 그 자체였다. 흔히 하는 표현대로 정말 잘 긁히는 날이었다. 그 날의 커브는 정말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노히트 노런을 아깝게 놓친 충격이었을까? 세 경기 연속으로 다시 부진의 늪으로 빠져 들었다. 1.3이닝, 5이닝, 2.3이닝. 다시 이후 세 경기서는 포텐셜을 터뜨렸다. 사직에서 현대와 치른 징검다리 시리즈에서 완투승 1번을 포함 2승을 거뒀다. 그 사이에 낀 두산 잠실 경기가 바로 7회까지는 노히트를 기록했던 경기였다. 그러다 다시 두 경기 부진. 결국 시즌 최종 등판에서 다시 삼진 11개를 솎아 내며 언터쳐블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정말 너무 기복이 심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기본적으로 장원준 선수는 제구력이 좋은 선수가 못 된다. 9이닝당 평균 볼넷(BB/9)이 4.28로 리그 평균(3.35)보다 높다. 특히 주자가 있을 경우 리그 평균은 3.53, 장원준은 5.48였다. 주자가 없을 때는 3.43으로 리그 평균(3.19)보다는 높지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팬들이 지적한 대로 '새가슴증'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게다가 주자가 있을 때 피장타율 .457을 기록했다. 주자가 있을 때 장타는 곧바로 실점과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2스트라이크를 잡은 이후 허용한 장타율 역시 .333에 달했다. 이는 리그 평균인 .269에 비해 64포인트 높은 기록이다. 결정구가 부족했다는 방증. 140킬로 초중반의 직구와 각이 좋은 커브, 그리고 간간히 섞어 던지는 슬라이더는 모두 제대로 구사하기만 하면 충분히 위협적이다. 특히 잘 긁히는 날 커브는 정말 예리하다. 문제는 주자가 나가면 구위가 급속도로 저하된다는 점. 주자가 없을 때 장원준의 피장타율은 .302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장원준 선수에게 최고 관건은 주자를 내보내지 않는 능력이었다. 물론 이는 모든 투수에게 해당되는 것. 그러나 장원준은 일단 주자가 나가면 컨트롤이 흔들리거나 볼이 가운데로 쏠려 장타를 얻어맞기 일쑤였다. 이 비율이 어느 투수보다 심했다. 이래서는 결코 좋은 투수로 성장하기가 어렵다. 다시 말해 '새가슴증'을 고치지 않고서는 좋은 투수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스터프를 갖고 있다 해도 배짱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이 데이터를 6월을 기준으로 나눠보면 더욱 충격적이다. 5월 이전 주자 있을 때 상대 타자는 장원준을 상대로 .380/.478/.606(GPA .366)을 때렸다. 그야말로 1군에 있기 민망한 수준. 같은 기간 주자가 없을 때는 .263/.352/.313(GPA .236)으로 수준급이었다.

5월만 살펴보면 이 결과는 더더욱 나빠진다. 주자가 없을 때에도 .370/.414/.481(GPA .307)을 허용하면서 선발에서 불펜으로 강등됐고, 결국 2군으로 떨어졌다. 주자가 나가 있을 땐 .517/.595/.759(GPA .457)이었다. 중학교 투수가 프로 타자들을 상대로 던진 기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그 결과 세 경기를 합쳐 5.3이닝밖에 던지지 못했다.

2군에서 최계훈 코치 지도를 받은 뒤로는 달라졌다. 상대 타자들은 .218/.300/.297(GPA .209)밖에 때리지 못했다. 2군에 가기 전 전체 기록은 GPA .315 수준이었다. 2군에서 돌아온 뒤 주자가 있을 때도 .247/.354/.341(GPA .244)로 틀어 막으며 5월 이전보다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GPA를 비교 기준으로 삼을 때 전반기에 비해 무려 122포인트 떨어딘 것.

특히 .582였던 DER이 .740로 상승했다. 그만큼 타자들이 장원준을 상대로 질좋은 타구를 양산해 내기가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G/F 비율 역시 1.29에서 1.60으로 높아졌다. 6%던 병살 유도 비율도 11%로 올랐다. 2.47이던 WHIP을 1.29까지 끌어내린 건 당연한 부산물.

물론 긁히는 날과 아닌 날의 차이는 여전했다. 하지만 이 세 그래프는 어떨까?







위에서부터 '주자가 루상에 나가 있을 때 허용한 WHIP', GPA, K/9를 나타낸다. 주자를 늘리는 비율이 확실히 감소했고, 출루와 장타 허용을 모두 고려한 GPA도 감소세다. 유사한 그래프 모양에서 알 수 있듯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도 심리적 안정을 찾은 것. K/9도 바닥을 친 뒤 상승세로 접어들었다.

말하자면 장타를 의식해 과감한 승부를 보이지 못했던 '새가슴증'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고 있다는 증거가 될지도 모르겠다. 자신기 스터프를 제대로 활용하기 시작했다고 해도 크게 들린 말은 아닐 것 같다.

최계훈 코치가 2군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지도했던 건 투수판에서 발의 위치라고 한다. 이와 함께 자신감을 되찾은 것도 큰 소득. '양아버지' 양상문 감독이 인터뷰한 것처럼 "눈빛 자체가 달라진 효과"인 것이다. 이는 기록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K/9는 6.47에서 6.72로 올랐고 K/BB도 1.28에서 1.92로 좋아졌다. 이닝당 투구수는 19.0개에서 16.1개로 줄었다.

적어도 '05 시즌 장원준 선수는 확실히 성장과 발전의 길을 걸었다. 노히트 노런에 성공하지 못한 게 오히려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고 할 수도 있을 터. 특히 '새가슴증'이 치료돼 간다는 건 고무적이다. '양아버지'가 떠난 '06시즌이 어쩌면 장원준 선수에게 진정한 시험대가 될지도 모르겠다. 베이스 커버 연습을 열심히 해서 언젠가는 꼭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기를…. 전병두, 노환수, 정우람 등과 함께 좌완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는 그 중심에 장원준 선수가 자리잡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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