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 0. WP 그래프




# 1. 투수진

홈 팀 SK에서는 이번 시즌 8승 8패 방어율 4.24, WHIP 1.30을 기록한 채병룡 선수를 선발로 내세웠다. 당초 김원형 선수가 예상되기도 했지만, 전체 8승 가운데 對 한화 戰에서만 3승을 뽑아내는 등 한화에 유독 강한 모습을 보였던 채병룡 선수가 결국 예상을 깨고 막중한 첫경기 선발의 임무를 부여받았다. 

한화를 상대로 방어율 2.50을 기록하며, 피OPS 역시 .590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은 조범현 감독의 선택 과정에 고민을 덜어줬을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장타력의 팀 한화를 상대로 .301의 피장타율만을 허용한 것은 매우 훌륭한 성적이었다. 이는 이번 시즌 한화의 팀 장타율 .434에 비해 30% 정도 낮은 수준이다. 

한편 원정팀 한화 이글스는 이번 시즌 10승 9패 방어율 3.47, WHIP 1.33을 기록한 문동환 선수를 첫 번째 카드로 뽑아들었다. 지난 8월 23일 문학 구장에서 펼쳐진 김원형 선수와의 맞대결에서 비록 패전의 멍에를 짊어지는 했지만 8 2/3 이닝 동안 단 2실점에 그친 그의 피칭은 많은 팬들로부터 진정한 승자는 문동환 선수였다는 찬사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후 9월 9일 경기에서도 비록 패전을 끌어 안기는 했지만 7이닝 동안 역시 실점은 2실점에 불과했고, 두 점 모두 비자책점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오늘 경기에까지 이어졌다. 문동환 선수, 단기전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경기에서 9이닝 1실점 완투 경기를 펼치며 팀에 정말 소중하기 이를 데 없는 1승을 안겨줬다. SK 타선은 문동환 선수의 호투에 막혀 단 5피안타에 그쳤고 8회 1실점 역시 브리또 선수의 기록되지 않는 실책의 영향이 컸다. 한마디로 진정 에이스란 무엇인지 보여준 멋들어진 모습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채병룡 선수 역시 5이닝 동안 2실점으로 비교적 괜찮은 투구 내용을 펼쳤지만, 조원우 선수와 데이비스 선수에게 1회와 5회 각각 출루와 타점을 허용하며 결국 패배를 기록하고야 말았다. 

한화는 불펜에서 최영필, 지연규 선수가 몸을 풀기는 했지만 문동환 선수의 완투 속에 힘을 비축할 수 있었고, SK 측에서는 채병룡 선수에 이어 위재영 선수가 등판했지만, 채종범 선수가 볼을 더듬는 사이 브리또 선수에게 추가 1실점을 허용, 충격이 컸다. 이어 윤길현 선수가 등판, 무실점으로 8회를 막아냈지만, 9회에 올라온 조웅천 선수가 조원우 선수에게 솔로 홈런을 허용하며 안타까운 모습을 보였다. 결국 이승호, 조영민 선수가 각각 아웃 카운트 하나씩을 잡아내고 나서야 한화의 9회초 공격은 마무리 될 수 있었다.

문동환 선수의 완투는 오늘 하루의 대단한 활약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불펜진을 아꼈다는 의미에서 더더욱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하겠다. 특히, 한화 불펜진의 평균 연령대가 SK에 비해 비교적 높다는 점은 감안할 때, 게다가 지연규 선수의 몸상태가 완전히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늘의 활약은 단기전의 특성상 팀 전체의 불펜 활용에 있어 상당한 여유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SK는 믿었던 두 노장 투수, 위재영, 조웅천 선수가 실점을 기록,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아직 불펜진에 부하가 걸릴 수준은 아닌 만큼 남은 경기에서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2 수비진

SK는 두산과 함께 이번 시즌 최소 실책(80개) 1위팀이었다. 하지만 실책만으로 수비진을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실책이란 야구 기록 가운데 어쩌면 유일하게 선수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책의 기준은 기록원의 주관적인 판단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실책이 오히려 경기의 승패에 끼치는 영향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팀의 수비력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실책수뿐 아니라, DER이라는 수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DER이란 Defense Efficiency Ratio의 약자로, 상대 타자가 때린 타구를 수비진에서 몇 %가 아웃으로 처리하는지를 나타내주는 지표다. 수비의 궁극적인 목적은 상대 타자를 아웃으로 처리해 실점을 하지 않는 데 있다는 점을 볼 때, 투수의 통제를 벗어난 부분, 즉 삼진, 사사구, 홈런을 제외한 인플레이 타구를 아웃으로 처리하는 비율이 수비진을 평가하는 데 있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SK는 이번 시즌 DER에 있어 .716을 기록 1위에 올라 있다. 최다 실책 팀 한화는 이 기록에서는 .686으로 5위를 기록 실책으로 드러나는 것보다는 견실한 수비를 보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맞대결을 펼치고 있는 SK에 비해 좋은 수비진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 경기에서 이러한 점들은 오히려 반대 양상으로 드러나 버렸다. 

오늘 SK의 수비는 사실 아쉬운 구석이 많았다. 비록 실책으로 기록된 것은 정경배 선수가 더블 플레이 상황에서 1루에 악송구했던 하나에 그치고 말았지만, 정경배 선수는 잡아야 할 타구를 잡지 못해 안타로 만들어주는 장면을 한번 더 연출했다. 게다가 채종범 선수 좌익수 쪽 코너에서 볼을 더듬으며 발이 느린 브리또 선수에게 실점한 것은 반성해야 할 만한 부분이라고 본다. 2점차와 3점차는, 게다가 이런 큰 경기라면 더더욱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8회말 대타로 나선 김기태 선수의 타구를 처리하던 브리또 선수의 플레이도 사실 실책을 줘도 무방했다. 결국 이것이 빌미가 돼 한화는 1실점을 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문동환 선수의 여유있는 다독임, 그 결과 9회말에는 이호준 선수의 안타성 타구를 멋지게 캐치, 역동작으로 플립하며 병살로 처리했다. 김재현 선수에게 선수 타자 안타를 허용하며 클린업 트리오를 연속으로 상대해야 했던 부담으로부터 문동환 선수를 구해준 멋진 장면이었다. 정말 문동환 선수 짜릿해 하며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들 만한 좋은 수비였다. 그리고 타석에서는 4타수 1안타의 평균작밖에 올리지 못했지만, 5회 김민재 선수의 타구를 병살 처리한 것을 비롯 김태균 선수 역시 수비에서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

흔히 큰 경기는 자잘한 것이 승패를 가른다고 말하고는 한다. 게다가 수비라는 게 원래 잘할 땐 티가 별로 안 나다가 못하면 지나치게 주목받는 영역이기도 하다. 멋진 호수비로 투수에게 힘을 실어주는 과정이 중요한 건 재차 강조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견실한 수비로 투수진에게 믿음을 주는 일이 우선이라고 하겠다. 실책으로 투수의 힘을 낭비해서 좋을 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SK는 다시 뛰어난 수비를 자랑하던 모습으로 돌아가길 바라며, 한화 역시 투수들이 수비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오늘처럼 마음껏 공을 뿌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길 기대해 본다.



#3 공격진

한화는 장타력의 팀이다. 반면 SK는 잔야구의 팀이다. 한화는 팀 장타율 1위팀이고, SK는 희생번트 1위팀(136개)이다. 그만큼 공격의 색깔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은 이번 시즌 31개밖에 대지 않았던 희생번트를 1회초부터 과감하게 지시하며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리고 이 작전은 멋들어지게 성공했다.

오늘 양팀을 통틀어 공격 부분 최고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는 누가 뭐래도 조원우 선수다. 이번 시즌 SK에서 한화로 이적한 조원우 선수는 오늘 경기에서 친정팀을 상대로 5타석 4타수 4안타 1홈런의 맹타를 휘두르며 한화의 공격을 선두 지휘했다. 데이비스 선수 역시 자신 앞에 놓은 찬스 가운데 2번을 성공시키며 2타점, 선취점과 추가점을 팀에 선물하며 자기 몫을 100% 달성했다.

석 점째는 6회초 신경현 선수의 방망이에서 비롯됐다. 투수앞 내야 안타로 1루에 출루한 브리또 선수를 불러들이는 좌월 2루타였다. 비록 채종범 선수의 실책성 플레이가 개입되기는 했지만, 1회 데이비스 선수의 2루타에 이어 잔 야구와 굵은 야구가 결합된 형태의 퓨전형 플레이였다. 신경현 선수는 8회에도 2루타를 뽑아내며, 문동환 선수와 찰떡궁합을 보여준 것은 물론 공수에 걸쳐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은 다시 한번 조원우였다. 홈런. 팀 홈런 1위 팀이 그대로 승리를 챙기기는 아쉽다는 듯, 8회말 1점을 추가한 SK의 추격으로부터 다시 한걸음 앞서가는 홈런이었다. 특히 조웅천 선수로부터 뽑아낸 홈런이라는 점도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9회 조범현 감독이 조웅천 선수를 마운드에 올릴 때는 클린업 트리오로 이어지는 9회말의 추격 의지도 분명 반영돼 있었을 테니 말이다.

SK의 1득점은 대타로 나선 김기태 선수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짜임새에 의했다기보다 오히려 1점 정도는 줘도 괜찮다는 한화 수비진의 판단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점을 볼 때, 분명 SK의 공격력은 오늘 지적받을 수준이었다. 팀의 분위기가 가라앉았을 때는 고참 선수들의 솔선 수범이 중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오늘 SK에서 그런 역할을 맡아 주어야 할 선수들 가운데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선수는 그나마 대타로 나선 김기태 선수뿐이었다. 

클린업 트리오에서는 김재현 선수만이 2안타를 기록하며 체면을 세웠다. 이호준 선수는 9회말 병살타를 치며 선두 타자로 얻은 기회를 무산시켜 버렸다. 박경완 선수도 심각했다. 2회말 SK의 공격, 비록 2사 후이긴 했지만 정경배 선수의 도루로 맞은 2루 찬스를 박경완 선수는 살려내지 못했다. 그리고 두 타석 연속 삼진, 확실히 뭔가 집중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SK의 팀 컬러를 감안할 때 선두 타자의 출루는 공격을 풀어나가는 데 있어 확실히 긍정적인 요소이다. 실제로 3회말 김태균 선수의 볼넷으로 얻은 기회에서 김민재 선수가 희생번트를 깔끔히 성공시키며 상위타선으로 찬스를 이어줬다. 하지만 두 간판타자 박재홍, 이진영 선수 모두 찬스를 살리지 못했다. 선두 타자가 출루한 나머지 두 번의 기회에서는 모두 다음 타자가 병살을 기록하고야 말았다. 전체적인 응집력이 부족했다고 할 만 하겠다. 

문동환 선수의 구위에 눌린 것인지 아니면 전체적인 공격 라인이 가라앉은 것인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만약 앞으로도 오늘 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분명 시리즈를 풀어나가기가 수월찮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어정쩡한 모습으로 가느니 확실히 팀 컬러를 살려 공격을 풀어나가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은가 하는 판단이 든다.

반면 한화는 오늘처럼 잔야구와 굵은 야구가 결합된 효율적인 경기를 펼친다면 분명 시리즈를 흐름을 가져오는 데 있어 유리한 모습을 보일 것이리라고 본다. 하지만 앞으로 시리즈에서 상대해야 할 투수들이 만만찮다는 점을 감안하자면, 오늘 같은 흐름을 이끌기 위해 지금보다도 더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 4 나가면서

승리는 설명할 필요가 없고, 패배는 설명할 권리가 없다는 말이 있다. 오늘은 한화의 승리였고, 문동환 선수의 승리였다. 위에서 부족한 눈으로 설명을 곁들이기는 했지만, 사실 이 한 줄이면 설명이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인식 감독의 작전이 빛났고, 끝까지를 투수를 믿어준 게 좋았다.

한편, 이런 말도 있다. 이긴 경기에서는 배울 게 없지만, 진 경기에서는 모든 걸 배워야 한다는 격언 말이다. SK는 단기전에서 가장 중요한 1차전을, 그것도 홈에서 내주벼 다소 분위기가 가라앉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은 지는 팀의 전형적인 모습밖에 보여주지 못한 만큼 좀더 짜임새 있는 공격을 시도한다면 분명 흐름을 바꾸는 데 있어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은 둥글고, 야구는 정말 ‘몰라요.’다. 오늘 승리한 한화팀의 선수와 팬 여러분께는 축하의 말씀을, 패배한 SK 선수와 팬 여러분께는 격려와 용기의 말씀을 전하며, 내일도 멋진 승부가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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