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KBO

'05 한국시리즈 전망


결국 맞붙을 팀끼리 맞붙게 됐다. 6월 이후 SK의 돌풍이 매섭게 몰아치며 두산을 위협, 한때 2위를 굳히는 듯 했으나, 이번 시즌 내내 최고의 실력을 보여준 두 팀을 꼽으라면 역시나 삼성과 두산이다. 먼저, 이번 시즌이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 그래프를 통해 살펴 보도록 하자.


이 그래프에서 기아는 빼달라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던 陸遜 님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그래도 이번 시즌에 마지막으로 올라가는 것이니 양해 바랍니다.

보시다시피, 양 팀은 2강 체제를 꾸준히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다. SK에게 추월을 허용했던 두산 역시 특유의 뚝심을 보이며 기어이 2위 수성에 성공했다. 시즌 최종일의 이 사건은 정말 작은 기적이라 불리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한화를 상대로 스파링을 하듯 플레이오프를 스윕하며, 경기 감각까지 되살린 채 한국 시리즈에 나서게 됐다. 스포츠 신문에 흔히 나온 표현대로, 정말이지 선동열 감독 밤 잠 못 들게 만들 만큼 무서운 상승세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삼성은 단 한번도 추월을 허용하지 않을 만큼 강한 면모를 시즌 내 보여줬다. 비록 부침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만큼 탄탄한 전력을 보여줬다는 얘기다. 사실 삼성 팬들의 초보 감독의 경기 운영에 관한 볼멘소리는 다른 팀 팬들에게 '염장'으로 들릴 정도였다. 초호화판 멤버에 선동열이라는 슈퍼스타 출신 감독, 그들의 명성이 쉽사리 얻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 시즌이었다. 경기 감각 문제가 다소 걱정되기는 하지만, 자체 청백전 등을 통해 분명 꾸준히 컨디션을 점검해 왔을 것이다. 분명 상대에게 위협을 주기 충분한, 명실공히 1위팀이다.

따라서 승부를 쉽사리 예상하기란 쉽지가 않다. 한번 전체적인 기록을 통해 양 팀의 모습을 되짚어 보기로 하자.



두산은 이번 시즌 75승 팀이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면, 한화와 치른 플레이오프까지 포함하자는 그렇다는 얘기다. 그리고 득/실점 자료에 기반한 피타고라스 승률에선 .612로 삼성의 .569에 오히려 앞선다. 이는 두산의 전력이 오히려 삼성보다 안정돼 있음을 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예상 혹은 기대 승률일 뿐, 실제로 가장 강한 팀은 가장 높은 승률을 올린 팀이다. 비록 승수에서 2경기밖에 차이가 나지 않기는 하지만, 이번 시즌 최강팀은 역시 삼성이다.



그럼 우선, 공격력에 있어 어떤 차이를 보였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두산은 한화와 함께 이번 시즌 팀 타율 1위 팀이다. 반면 장타율은 꼴찌다. 장타율에 타율이 반영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런 간극은 두산의 장타력이 정말 문제적인 수준임을 증명한다. 하지만 거꾸로 그만큼 소위 '똑딱이' 야구에 있어 놀라운 효율을 보였음을 의미한다. 두산 타자들은 일방장타 대신 꾸준히 밀어침으로써 상대 투수를 괴롭혔다. 두산의 우측 타구 비율은 49.71%에 달한다. 게다가 최소 실점 1위팀이라는 결과가 말해주듯, 그들이 승수를 올리기 위해 필요한 득점은 그리 많지가 않았다. 따라서 장타로 많은 득점을 양산하기보다 적시에 필요한 만큼의 안타를 뽑아내 질 높은 득점을 올렸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한편, 삼성은 이번 시즌 공격 팀 컬러에 다소 변화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장타력의 팀이라는 이미지가 무색하게, .391의 장타율로 4위에 그쳤다. 타자들의 구장인 대구 구장을 홈으로 쓰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고민해 볼만한 사항이다. OPS 역시 4위, 기대에 못 치는 수준이다. 팀 출루율이 1위라는 점을 고려할 때, 역시 장타력이 문제였다. 하지만 팀 득점은 614점으로 한화에 이어 2위였다. 공격의 궁극적인 목적을 득점 생산이라고 했을 때, 효율의 문제를 떠나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는 얘기다. 몰아쳐야 할 땐 몰아쳐줬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이어서 수비 ;



지난 번 플레이오프 전망에서도 언급했지만, 두산은 팀 최소실점 1위팀이다. 물론 이는 홈 구장이 잠실 구장인 영향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DER을 통해 본 수비나, FIP를 통해 본 수비력과 투수력 모두 인상적이다. 그리고 이런 결과는 플레이오프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됐다. 두산의 수비 라인은 꽉 짜여져 있다는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김동주가 맡고 있는 3루가 유일한 불안요소라고는 하지만, 경기 후반 홍원기, 나주환 등을 대수비 요원으로 기용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김 선수가 공격력으로 수비력을 상쇄한다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삼성의 좌타자들을 고려할 때 우측 수비라인 - 장원진, 안경현, 김창희 모두 튼튼한 수비를 가졌다는 건 분명 두산의 자랑일 수밖에 없다.

투수력 역시 마찬가지다. 리오스는 후반기 성적을 따로 언급하지 않더라도, 현재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에이스라 불릴 만하다. 랜들 선수 역시 9월 이후 확실히 투구감을 되찾았다.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봤듯 이재우, 정재훈 선수의 불펜진은 공포스러울 정도다. 게다가 박명환이 가세한다. 이번 시즌 전반기 박명환은 손민한, 배영수 등과 함께 빅3라 불릴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물론 그의 컨디션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의 네임 벨류 자체가 가져다주는 파급효과가 어느 정도 예상된다. 선발로 나서 그리 긴 이닝을 책임지지 못하더라도 5-6이닝 정도만 효과적으로 삼성 타선을 봉쇄한다면 성공적인 등판이 되리라고 본다. 그리고 삼성의 좌타 라인을 막아내기 위해 새로 투입된 조현근 선수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밖에도 두산의 한국 시리즈 라인업에는 금민철, 이혜천 등 총 3명의 좌투수가 포함돼 있다. 금민철 선수를 원포인트용이라고 쳤을 때, 이혜천 선수의 활용 방안 역시 주목해 볼 만한 점이라고 하겠다.

위에서 두산의 수비력과 투수력을 칭찬했지만, 그보다 나은 모습을 보인 팀이 바로 삼성이다. 삼성은 .709의 DER로 SK에 이어 2위, FIP에 있어선 4.17로 두산의 4.20을 제치고 1위다. 대구 구장이 타자에게 유리한 구장임을 감안하자면 이는 매우 훌륭한 성적이라고 하겠다. 포수 진갑용 선수를 시작으로 김한수 - 박종호 - 조동찬 - 박진만이 지키는 내야는 매우 견실해 보인다. 조동찬 선수의 실책수가 다소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두산에 밀어치는 타자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외야 역시 심정수 선수를 제외하고는 수비 범위와 송구력 측면에서 모두 문제될 게 없어 보인다. 게다가 내야엔 김재걸, 외야엔 김종훈으로 대변되는 벤치 요원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 역시 삼성에겐 큰 이점이 될 전망이다. 게다가 삼성엔 내/외야를 모두 볼 수 있는 선수들 역시 제법 있다.

투수진에 있어선 배영수 선수의 후반기 부진이 삼성으로선 걸림돌이다. 하지만 지난해 한국 시리즈에서 10이닝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그다. 물론, 작년과 올해의 배영수가 똑같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 큰 경기에 강하다는 점을 이미 입증했다는 사실만큼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사실 삼성의 외국인 용병 투수 두 명의 구위는 믿기 어려운 구석이 있는 게 사실이다. 아마도 선동열 감독도 이점에 대비 임동규, 라형진을 엔트리에 포함시킨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오상민 역시 엔트리에 포함됐다. 또다른 좌투수 전병호가 이닝을 길게 끌고 가주는 스타일로 활용될 것이라면, 오상민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두 타자 정도를 상대할 공산이 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삼성의 마무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강의 '철가면' 오승환이다. 말할 것도 없이 최강이기는 하지만, 큰 무대 경험이 없다는 게 어떻게 작용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포스트시즌에서도 정규 시즌 때처럼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일 것인지, 아니면 신인으로서의 경험 부족을 드러낼 것인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만약 그가 여전히 포커페이스라면 두산은 그가 마운드에 오르기 전, 승부를 끝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목이 가는 몇몇 매치업을 살펴보도록 하자.

1) 홍성흔 Vs 진갑용

진갑용 선수는 홍성흔 선수에 밀려 삼성으로 트레이드 돼 왔다. 그리고 삼성에서 멋지게 재기에 성공했다. 박경완 선수와 더불어 국내 최고의 포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성흔 선수 역시 두산 특유의 '허슬 두' 이미지를 대변하며 안방마님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한화와의 플레이오프에서도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로 경험 없는 두산의 젊은 불펜진을 훌륭히 리드한 바 있다. 진갑용 선수는 충분한 휴식으로 인한 체력 비축이 장점, 홍성흔 선수는 팀의 상승세로 자신의 파이팅이 절정에 달해있다는 점이 각각 장점이라고 하겠다. 한편, 두산에는 강인권이라는 수비 좋은 백업 포수가 준비돼 있는 데 반해, 삼성의 이정식은 수비면에서 다소 불안하다는 점에서 전체적인 평점은 두산이 다소 우위라고 본다.


2) 손시헌 Vs 박진만

한국을 대표하는 두 유격수간의 맞대결이다. 박진만 선수는 무엇보다 풍부한 경험이 자랑이다. 한국 시리즈 무대에 여러 차례 서봤고, 우승 경험만도 4회에 이른다. 유연한 수비 동작과 넓은 수비 범위는 국내 제일이다. 하지만 '두산의 복덩이' 손시헌 선수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수비와 타격 모두에서 박진만에 뒤지지 않는 모습으로 성장했다. 주루 플레이가 다소 아쉽긴 하지만, 처음부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입단했던 선수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충분히 괄목상대할 만한 성장이다. 게다가 내년에 입대를 앞두고 있다는 점 역시, 손 선수의 의욕을 북돋우는 촉매제가 될 걸로 보인다. 노련한 경험의 박진만 선수가 승리를 거둘지, 신예 손시헌 선수가 뿌듯한 입대 선물을 품에 넣을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3) 심정수 Vs 김동주

한때 우즈와 함께 우동수 트리오를 구성했던 두 선수가 이제 라이벌로 한국 시리즈에서 격돌하게 됐다. 한 선수는 이적과 고액 연봉에 대한 부담 등으로, 한 선수는 시즌 내 이런저런 부상을 겪으며 다소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던 게 사실이다. 희망차게 플레이오프 무대에 복귀했던 김동주 선수, 홈런 1개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그걸 제외하면 그리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다. 심정수 선수 역시 시즌 막판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장기간 경기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 경기 감각이 어떨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큰 것 한방이 시리즈 전체의 흐름을 좌우할 수 있는 게 바로 단기전이다. 따라서 양팀 주포 가운데 누가 터져주느냐 하는 점 역시 주목해 볼 만한 사안이라고 하겠다. 게다가 네 경기가 대구 구장에서 벌어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더더욱 그렇다. 가을 하늘을 시원하게 가르는 그들의 홈런포를 기대해 본다.


4) 권오준(박석진) Vs 최경환

한화의 플레이오프 로스터에 포함된 옆구리 투수는 신주영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삼성의 한국 시리즈 엔트리에는 박석진, 권오준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경기 중반 마운드에 올라 경기 흐름을 이끌어 가는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본다. 그런 점에서 두산 코칭 스태프가 최경환 선수를 어떻게 기용할 것인지 하는 점 역시 관심거리다. 두산이 한화를 꺾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했던 선수는 '깜짝스타' 전상열 선수였다. 마찬가지로 한국 시리즈에서 두산이 삼성을 꺾기 위해서는 최경환 선수가 비슷한 역할을 해주어야 할 것으로 본다. 거꾸로 삼성 쪽에서 볼 때는 좌투수를 투입해 최경환을 상대할지, 아니면 그대로 이들로 밀어붙여 오상민, 전병호를 아낄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특히 권오준은 선발과 마무리를 이어주는 연결다리 역할을 확실히 해주어야 할 처지에 있다고 본다. 두산 타자들, 특히 최경환이 권오준 공략에 성공할지, 아니면 권오준이 성공적으로 오승환을 마운드에 올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5) 김경문 Vs 선동열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는 대로, 해(Sun)와 달(Moon)의 대결이다. 이름뿐 아니라, 성격이나 경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다. 선동열 감독으로서는, 비록 지난해 마운드 운영의 전권을 위임받았다고는 하지만, 자신이 공언했던 5년간 3번 우승이라는 취임 목표의 첫단추를 어떻게 끼울지 관심이 모아진다. 반면, 김경문 감독은 이번 시즌 플레이오프에서도 승부사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 신진 명장임을 널리 확인시켰다. 둘의 오랜 인연도 인연이지만, 이 두 감독이 선수단을 어떤 방식으로 이끌고, 경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삼성이 초호화 멤버를 바탕으로 선수들이 팀을 구성해 가는 방식의 야구를 하는 팀이라면, 두산은 반대로 팀에서부터 비롯해 선수들로 퍼져 나가는 방식의 야구를 하는 팀이다. 삼성은 팀으로 완성되고, 두산은 팀에서 시작된다. 강렬한 태양빛이 광합성을 유도 열매를 맺게 할지, 아니면 은은한 달빛 아래 가을꽃들이 만개할지 흥미진진한 대결이 될 것이다.



사실 시리즈를 예측하기란 굉장히 곤혹스런 일이다. 어느 팀이 우승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한 팀은 전력이 탄탄하고, 또 다른 한 팀은 분위기가 매섭다. 시뮬레이션 결과 역시 마찬가지다. 득/실점 기록을 토대로 해보면 두산이 우세(.573)하고, 승률로 따져보면 삼성이 우세(홈 어드벤티지를 고려하면 .596)다. 야구란 흐름의 경기고, 흐름은 자잘한 것에 의해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게다가 이렇게 팽팽한 경기라면 더더욱 그렇다. 개인적인 예상으로는 1차전 승리팀이 6차전에서 승리할 걸로 전망한다. 하지만 예상은 틀리기 위해서 하는 점이라는 걸 밝히며, 글을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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