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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그는 자신이 노리지 않는 공이라면 스트라이크라고 해도 건드리지 않는 타자였다. 그런 공은 단지 '커트'해내며 다음 공을 다시 기다릴 뿐이었다. 그것은 훗날 '투스트라이크 이후에 장효조가 건드리지 않는 공은 볼'이라는 말을 만들어냈고…

-김은식 '억세게도 상복 없는 '타격의 달인', 오마이뉴스

김은식 씨가 장효조를 찬양한 저 문구를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지만, 타자들이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건드리지 않는 공은 십중팔구 '볼'이다.

이번 시즌 타자들은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볼을 1만5885 개 흘려 보냈고 이 가운데 89.1%(1만4151 개)가 볼이었다.

장효조는 물론 선구안이라면 둘째 가기 서러운 타자지만, 저 표현만으로 설명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두산 유재웅이 대표적인 케이스.

유재웅이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기다린 공 가운데 97.4%가 볼이었다. 하지만 유재웅은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47번이나 헛스윙으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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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웅은 '선구안'이 뛰어난 타자일지는 몰라도 '참을성'이라는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는 뜻이다.

같은 팀 이성렬은 반대다.

이성렬은 투 스크라이크로 몰린 이후에도 타석당 평균 1.1개를 그냥 흘려보냈다.

덕분에 스탠딩 삼진을 23개나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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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팬들은 곧잘 '참을성'과 '선구안'을 동의어로 처리하지만 실상은 다른 것이다.

한 프로팀 타격코치는 "선구안이 볼, 스트라이크를 구분하는 능력이라면 참을성은 상황에 맞는 공을 골라내는 능력"이라며 "상황에 따라 볼을 칠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 참을성"이라고 말했다.

주자가 필요하면 볼을 골라 걸어 나가고, 주자를 불러들어야 할 때는 입맛에 맞는 공을 골라 치는 것이 참을성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본인에게는 미안하지만, 이성열은 그저 굼뜬 타자일 뿐이다.

그렇다면 가장 참을성이 뛰어난 타자는 누구일까?

많은 분들이 예상하는 것처럼 두산 김현수다.

김현수는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도 많은 공(1.06개)을 기다리고 그 중 볼 비율(94%)이 높으며, 투 스트라이크 이후 타격 성적도 좋다.

김현수는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도 출루율이 4할2푼9리나 된다.

전체 타격 라인은 .282/.429/.372로 GPA(.286)를 기준으로 할 때 박재홍(.291)에 이어 2위다.

김현수가 타격 1위에 오른 비결은 바로 치기 좋은 공을 끝까지 기다리는 참을성과 뛰어난 선구안이었던 것이다.

미키 코크레인(Mickey Cochrane)은 1993년에 쓴 'Fan's Game'에 다음과 같이 썼다.

"투수에게는 누구나 승부구가 있다. 그걸 던지게 놔둬라. 그게 세 번째 스트라이크가 아니라면 흘려보내라. 두 번째 스트라이크도 그냥 지켜봐라. 그래야 치고 싶은 공이 온다. (중략) 평범한 선수는 그럴 듯한 공이 오면 방망이를 휘두르기 바쁘다. 하지만 치고 싶은 공을 기다리는 참을성과 자신감 없이는 대단한 타자가 될 수 없다."

김현수는 대단한 타자가 될 자질을 갖춘 우리 시대의 장효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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