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는 가장 끈질긴 자의 것이다. (La victoire appartient au plus opiniâtre.)
승리는 가장 끈질긴 자의 것이다. (La victoire appartient au plus opiniâtre.)
프랑스 오픈 테니스 대회 메인 경기장 필리프 샤트리에 코트를 찾은 팬들은 이 문구를 사이에 두고 챔피언 탄생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라파엘 나달(38·스페인)만큼 이 말을 멋지게 증명한 선수는 없었습니다.
나달은 이 코트 위에서 모든 공을 다 받아내겠다는 듯 끈질기게 뛰고 또 뛰었습니다.
나달은 그렇게 이 대회에서만 총 14번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클레이 코트 황제'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 어떤 테니스 선수도 특정 메이저 대회에서 이보다 많이 우승하지는 못했습니다.
나달은 심지어 선수 생활 마지막 모습도 참 끈질기고 또 악착같았습니다.
모두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도 그는 '아직은 아니다'면서 고개를 저었습니다.
심지어 올해 프랑스 오픈 1회전에서 탈락한 뒤에도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100% 장담할 수는 없다'고 했던 나달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달이 '여기까지'라고 했다면 '아, 정말 모든 걸 불태웠구나'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달은 "프로 테니스 무대를 떠나기로 했다는 소식을 여러분께 알려 드리려 한다"로 시작하는 동영상을 10일(이하 현지시간) 소셜미디어(SNS)에 올렸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최선까지 다했기에 완전히 평온한 마음으로 라켓을 내려놓을 수 됐다"고 했습니다.
다음 달 19~24일 스페인 말라가에서 열리는 올해 데이비스컵 파이널스가 나달의 은퇴 무대입니다.
노파심에 말씀드리면 데이비스컵은 해마다 열리는 남자 테니스 국가대항전입니다.
나달이 성인 국가대표로 첫 우승을 경험한 대회가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2004년 데이비스컵이었습니다.
나달은 "조국을 대표해 뛰는 대회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게 돼 설렌다"면서 "선수 생활이 완벽한 수미상관을 이루게 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나달은 2009, 2011, 2019년에도 스페인 대표팀 멤버로 데이비스컵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나달은 또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 남자 단식,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복식 금메달을 조국 스페인에 안기기도 했습니다
스페인 동쪽에 있는 섬 마요르카에서 태어난 나달은 프로 테니스 선수 출신 토니 삼촌(63)을 따라 세 살 때 처음으로 라켓을 잡았습니다.
토니 삼촌은 나달이 여덟 살이던 1994년 12세 이하 테니스 대회에서 우승한 뒤 왼손으로 포핸드를 쳐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오른손잡이였던 나달을 코트 위에서는 왼손잡이로 바꾼 것.
결과적으로 이 선택이 나달을 우리가 아는 나달로 만들었습니다.
나달은 1997년과 1998년 스페인 주니어 챔피언에 오른 뒤 열두 살이던 1999년부터 14세 이하 투어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열다섯 살인 2001년 프로로 전향합니다.
나달은 2003년 4월 21일 남자프로테니스(ATP) 단식 세계랭킹 96위에 오르며 처음으로 100위권 진입에 성공합니다.
나달이 메이저대회 데뷔전을 치른 건 이로부터 63일이 지난 그해 6월 23일이었습니다.
나달은 이해 윔블던 1회전에서 마리오 안치치(40·크로아티아·당시 68위)를 3-1 꺾으며 메이저 대회 첫 승을 기록했고 결국 3회전까지 올랐습니다.
나달이 처음으로 꺾어 본 세계랭킹 1위 선수는 로저 페더러(43·스위스·은퇴)였습니다.
나달은 2004년 3월 28일 마이애미 오픈 3회전에서 첫 맞대결을 벌인 페더러에게 2-0(6-3, 6-3) 완승을 거뒀습니다.
이어 그해 8월 15일 이데아 프로콤 오픈(현 바르샤바 오픈)에서 개인 첫 ATP 투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2005년이 밝아 오릅니다.
나달은 클레이 코트 시즌 대회인 몬테카를로 마스터스, 바르셀로나 오픈, 이탈리아 오픈에서 연달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그리고 클레이 코트 시즌 메이저 대회인 프랑스 오픈에 처음 출전해 바로 우승컵을 차지합니다.
19번째 생일날 열린 이 대회 준결승에서 페더러를 꺾은 나달은 사흘 후 결승에서 마리아노 푸에르타(46·아르헨티나·당시 37위)를 3-1로 꺾었습니다.
나달은 이해에만 우승 트로피를 11개 수집하면서 ATP 기량 발전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립니다.
이 시즌 종료 시점에 나달보다 세계랭킹이 높은 남자 단식 선수는 페더러 딱 한 명밖에 없었습니다.
2005년 이후 프랑스 오픈 4연패에 성공한 나달은 2008년에는 윔블던, 2009년에는 호주 오픈, 2010년에는 US 오픈에서도 첫 우승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러면서 2008 베이징 올림픽을 포함해 역대 최연소로 커리어 골든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됩니다.
나달은 2002년 호주 오픈 우승으로 페더러(20회)를 넘어 메이저 대회 남자 단식 최다 우승 기록 주인공이 됐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메이저 대회였던 프랑스 오픈 우승으로 이 기록을 22회까지 늘렸습니다.
계속해 윔블던 우승에 도전하던 나달은 부상으로 4강전을 앞두고 기권을 선언했습니다.
선수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잘 알고 있던 나달은 최대한 조심조심 걸었지만 내리막길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달은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한 2023년 호주 오픈에서 2회전 탈락한 뒤로 개점휴업 상태에 돌입했습니다.
지난해 5월 18일에는 2005년 첫 출전 이후 처음으로 프랑스 오픈에 불참하게 됐다는 사실을 알리며 "내년까지만 뛰고 은퇴하겠다"고 공표하기도 했습니다.
코트 복귀전이던 브리즈번 인터내셔널 때 다시 통증을 느낀 그는 호주 오픈을 건너뛰고 프랑스 오픈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나달은 2년 만에 다시 찾은 필리프 샤트리에 코트를 찾아 알렉산더 츠베레프(27·독일·3위)와 프랑스 오픈 1회전을 치렀습니다.
나달은 "지난 2년간 어떤 날은 뱀, 다른 날은 호랑이에게 물린 것 같은 통증에 시달렸다. 이 코트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마음으로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이 마음만으로 프랑스 오픈에서 한 번 더 승리하기에는 몸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나달은 열아홉 살 때 뮐러 와이스 증후군 진단을 받았습니다.
발뼈 조직에 변형을 일으키는 이 유전병으로 나달은 고질적인 통증을 안고 대회를 치러야 했습니다.
나달은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진리라면 내겐 통증이 진리다'라는 듯 코트로 나섰습니다.
그렇게 다시 열아홉 해를 버텨냈습니다.
나달은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 세계랭킹 1위에 이름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10년대(decade)가 세 번 지나는 동안 1위에 이름을 올린 선수는 나달밖에 없습니다.
나달은 이제 메이저 대회 최다 우승 기록 보유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역대 최고 남자 테니스 선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나달은 정답이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역사상 가장 사랑받은 남자 테니스 선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나달이 없었다면 역대 최고 선수라고 불릴 수 있는 누군가도 그리고 역사상 가장 사랑받은 선수가 틀림없는 그 누군가도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당신을 응원하면서 내게도 마조히스트 성향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당신이 통증과 끈질기게 맞서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내게도 큰 기쁨이었습니다.
덕분에 정말 재미있고 즐거웠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