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지난번에 우리는 "선두 타자에게는 안타를 맞더라도 볼넷은 내주지 말라."는 야구계의 통설이 실제 데이터를 통해 알아보면 잘못됐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사실 이밖에도 야구팬들이 흔히 하는 말 또는 해설위원들이 무심결에 정설처럼 내뱉는 말 가운데에도 실제 사실과 다른 진술들이 심심찮게 발견되고는 한다.

물론 이런 문장들은 많은 사람들의 입을 거치면서 경험적 지혜로 굳어진 것들이다. 따라서 이들이 전혀 실효성이 없는 이야기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히 따르지 말아야 할 충고들도 존재하게 마련이다. 오랜 관례처럼 선배들로부터 후배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이 문장들의 진위 여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실제적인 검증 없이 막연히 혹은 당연히 그렇다고 믿어온 결과였다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바뀐 투수의 초구를 노려라."는 진술은 실제 데이터를 통해 검증해 봐도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8월 말일까지 우리 프로야구 타자들은 구원투수를 상대로 했을 때 타율 .257/출루율 .330/장타율 .367을 때려냈다. 반면 바뀐 투수의 초구를 노린 경우는 타율 .369/출루율 .361/장타율 .440이다. 당장 타율만 비교해도 112 포인트나 차이가 난다. 따라서 원하는 코스에 공이 들어온다면 타자는 과감히 바뀐 투수의 초구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이 진술이 유효한 이유는 해설자들의 설명과 마찬가지다. 구원투수의 첫 번째 임무는 타석에 들어선 타자에게서 최대한 빨리 아웃 카운트를 얻어내는 데 있다. 루상에 주자가 나가 있는 위기 상황이든, 셋업맨 역할을 하기 위해 마운드에 오른 상황이든 이는 모든 구원 투수들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사항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는 게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투수들은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오지만 아직 경기 감각이 몸에 완전히 밴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안타를 허용하기가 쉬운 것이다.

하지만 양상문 해설위원이 "1회 선두 타자가 홈런을 치면 그 팀은 70% 정도가 패한다."고 말한 건 잘못된 이야기다. 양 해설위원의 얘기는 선두 타자에게 홈런을 맞은 투수는 좀더 신중한 투구를 펼치게 되고, 이 효과로 인해 투수의 집중력이 살아난다는 이야기였다. 얼핏 일리가 있기도 한 것처럼 들리는 이야기다. 하지만 한번만 더 생각해 보자. 이미 선취점을 얻었는데, 그러니까 분명 경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는데 질 확률이 더 높다고?

현재 이에 대해 구할 수 있는 자료는 '05 시즌과 올해 8월말까지의 기록이다. 지난 해 이 상황에서는 모두 17개의 홈런이 터졌다. 결과는 8승 9패로 70%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팀이 질 확률이 근소하게 높다. 하지만 겨우 1경기 차이는 무시할 만한 수준이다. 올해는 8월말까지 모두 9개의 선두 타자 홈런이 터졌다. 최종 결과는 7승 2패로 홈런을 때린 팀이 훨씬 유리하다. 두 시즌을 종합해 봐도 15승 9패다. 확실히 선두 타자 홈런을 친 팀이 유리한 승률인 것이다. 결국 승패에 영향이 없다고 보든가 아니면 오히려 유리하다고 보는 편이 옳아 보인다.  양상문 위원의 진술이 참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확실히 이는 실제로 벌어진 사건에 대한 진지한 관찰이 부재한 결과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고, 필드에서 벌어진 거의 모든 이벤트가 기록으로 남는다. 물론 동일한 타구도 기록원의 판단에 따라 실책이 되기도 하고 안타가 되기도 한다. 이런 부분까지 세세히 100% 기록하는 일은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많은 양의 데이터가 축적되다 보면 이런 표본의 오류는 0에 가까운 방향으로 수렴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실제 데이터를 차근차근 관찰해 나갈 때, 우리는 야구의 실제적인 '참모습'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될 것이다.

현재는 너무 필드에서의 경험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사실 선수로서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갖췄지만 해설자로서는 낙제점인 이들의 어눌한 말투를 참고 견뎌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필드 안의 오류가 그대로 시청자의 귀에 들어가는 불편 역시 잘못된 일이다. 팬들에게 올바른 사실을 알려야 할 의무를 지닌 이들이 오히려 사이비를 조장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해설을 너무도 쉽게 생각하는 안일한 태도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양상문 해설위원은 경험과 지식, 그리고 언변까지 갖춘 드문 분이라고 본다. 하일성, 허구연의 양강체제(?)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양상문 위원의 해설은 듣는 이에게 확실히 새로운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이번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말해야겠다. 이번만큼은 확실히 잘못된 해설을 하셨다고 말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정진하시는 분이라는 걸 알기에, 현장으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더더욱 즐겁고 정확한 해설을 들려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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