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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박찬호가 연일 호투를 거듭하고 있다. 선발 진입조차 다소 불투명하게 보였던 상황에서 출발했던 '06 시즌, 그러나 에이스 피비의 부진과 맞물려 박찬호의 호투는 더더욱 빛이 발하고 있다. 과연 그의 이런 호투는 계속될 것인가? 몇몇 세이버메트릭스 자료를 통해 앞으로 그의 '06 시즌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현재 박찬호의 방어율은 3.57로 규정 이닝을 채운 NL 투수 가운데 19위다. 분명 나쁘지 않은 수치다. 하지만 박찬호가 소속된 파드레스의 홈구장 펫코 파크는 ML 전체에서도 투수 친화적인 구장으로 손꼽히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박찬호의 실제 실점 억제력은 이보다 쳐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게다가 방어율에는 수비진의 능력이 반영된다. 물론 실책으로 인해 내 준 점수는 비자책점이다. 하지만 수비의 능력이라는 건 비단 실책수만으로 평가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수비 능력의 가장 중요한 점은 상대방으로부터 아웃 카운트를 뽑아내는 힘이다. 이를 보여주는 지표가 바로 DER(Defensive Efficiency Ratio)이다.

10일 현재까지 파드레스의 DER은 .732다. 다시 말해 인플레이된 타구(Balls In Play)의 73.2%가 아웃으로 귀결된다는 뜻이다. 이는 NL 전체에서 2위(ML 3위)의 뛰어난 기록이다. 물론 DER에도 구장 효과가 반영되지 않아 아쉬운 점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구장과 수비진 모두 박찬호 선수의 성적에 유리한 조건이라는 것만큼 확실하다.

하지만 박찬호 선수가 등판했을 때의 DER은 .706으로 팀 평균에 비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일부 독자들은 심판의 오심과 유격수의 실책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역시 한 원인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근본적인 까닭은 그것이 아니다. 박찬호 선수가 허용하는 타구의 성질 자체가 문제다.

타구의 성질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땅볼, 뜬공 그리고 라인드라이브성 타구(이하 LD)다. 물론 이밖에 번트성 타구, 내/외야 플라이 등을 비롯해 다양한 형식으로 분류가 가능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세 가지 성질을 가지고 많은 부분 설명이 가능하다. 이 가운데 가장 위험한 건 역시 LD다. 땅볼과 외야 플라이의 경우 약 75% 가량이 아웃으로 처리된다. 반면 LD의 경우 75%가 안타다. 즉,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많이 허용할수록 안타를 허용할 확률 또한 높아진다는 뜻이다.

NL 투수들이 허용한 평균 LD%는 19.0%다. 반면 박찬호의 경우 이보다 3.4%포인트 높은 22.4%의 LD%를 기록 중이다. 이렇게 높은 기록에 .706의 DER 지원이라면 확실히 수비의 도움이 컸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따라서 박찬호가 기록중인 낮은 방어율은 상당 부분 수비진의 도움이 반영된 결과라 볼 수 있다. 그러니까 구장과 수비진이 박찬호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 이런 영향을 제거하고 박찬호의 순수한 투구 능력만을 평가할 수는 없을까? 이를 위해 개발된 메트릭이 바로 FIP(Fielding Independent Pitching)다. FIP는 수비진의 개입 없이 투수와 타자 사이에서 직접적으로 발생하는 세 가지 플레이(Three True Outcomes) - 삼진, 볼넷, 홈런을 가지고 투수의 능력치를 측정하도록 도와주는 지표다. 방어율과 유사한 범위의 값을 보임으로써 독자들의 직관적인 판단을 돕는다는 것도 장점이다.

미국 현지 시각으로 10일 현재까지 박찬호의 K/9는 6.4로 준수한 편이며, BB/9 역시 2.2밖에 되지 않는다. HR/G 또한 0.8로 안정적인 수치다. 계속된 그의 호투가 수치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 결과 3.46의 FIP가 기록됐다. 이는 방어율보다 0.11낮은 수치다. 일반적으로 FIP가 방어율보다 낮은 경우 앞으로 해당 투수의 성적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하고는 한다. 이를 따르자면 박찬호의 성적 역시 지금보다 향상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박찬호의 높은 LD%가 다시 한번 발목을 잡는다. 투수가 허용하는 타구의 특성을 토대로 그의 향후 FIP를 측정하는 메트릭이 있다. 바로 xFIP(eXpected FIP)다. 현재까지 박찬호의 xFIP는 4.07이다. 물론 이는 방어율보다 높은 수치다. 지금처럼 계속 높은 비율로 LD를 허용한다면 그의 방어율이 다소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고무적인 건 이런 그의 xFIP가 최근 3년간 가장 낮은 기록이라는 사실이다. '04시즌과 '05 시즌엔 각각 5.34, 4.66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박찬호가 전성기의 실력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그리 높은 편이라 말하긴 어렵다. 그렇다고 말하기엔 너무 많은 라이드라이브성 타구를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처럼 부진할 가능성도 높은 편이 못 된다. 구장과 수비 모두 박찬호의 손을 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종합해 볼 때,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기록은 소폭 향상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박찬호 자신의 능력 향상과 함께 팀의 수비력과 구장 역시 박찬호에게 무척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박찬호는 슬라이더 구사 비율을 높인 상태다. 그 결과 우타자의 바깥쪽 아래 코스로 향하는 투구가 좌/우 타자 모두에 걸쳐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 코스는 사실 속지 않으면 볼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변화구 제구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하겠다. 실제로 타자가 슬라이더를 때렸을 경우 피안타율은 .199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직구는 .350으로 불안하다.

이제 우리는 박찬호에게 불같은 강속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대신 우리가 새로 기대하는 건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경기 운영과 위기관리 능력일 것이다. 현재까지 기록 중인 75.4%에 달하는 잔루처리 비율은 최근 3년간 가장 높은 수치다. 위기를 좀 많이 맞이하긴 해도 실점은 억제하던 예전의 기억을 되살리는 기록이다.

다소 불안할 때가 많았지만 힘찬 기합과 함께 위기를 모면하며 국민들의 피를 들끓게 했던 박찬호, 그리고 특유의 세레모니. 현재까지의 페이스는 확실히 나쁘지 않다. 이 페이스가 시즌 끝까지 이어져 FA 계약 마지막 해에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다시 한번, 박찬호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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