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2008년 5월 19일 안방 경기에서 노히트 노런을 남긴 존 레스터. 보스턴=로이터 뉴스1

역시 시간이 참 빠릅니다.

 

존 레스터(38)가 '노히트 노런'에 성공했다고 블로그에 남긴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그가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됐습니다.

 

레스터가 16년에 걸친 메이저리그 생활을 접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레스터는 12일(이하 현지시간) ESPN을 통해 "이제는 몸이 견디지 못한다"면서 "다른 사람이 그만두라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고마웠다. 정말 즐거웠다'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레스터는 메이저저리그 무대에 200승 117패, 평균자책점 3.66을 남기고 유니폼을 벗게 됐습니다.

 

레스터는 2002년 신인 지명회의(드래프트) 때 보스턴에서 2라운드 지명을 받아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06년 6월 10일 안방 구장 펜웨이 파크에서 텍사스를 상대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승패 없이 데뷔전을 마감한 레스터는 엿새 후 애틀랜타 방문 경기에서 6이닝 1실점으로 메이저리그 첫 승을 남겼습니다.

 

레스터는 이후 8월 23일까지 7승 2패, 평균자책점 4.76을 기록했지만 이날 이후 현역 로스터에서 이름을 감추게 됩니다.

 

교통 사고 후유증 때문에 치료를 받던 중 혈액암 일종인 림프종 진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림프종 투병을 끝내고 돌아와 안방 팬들에게 인사를 건넨 존 레스터. 보스턴글로브 홈페이지

그가 다시 메이저리그 마운드로 돌아온 건 이듬해(2007년) 7월 23일이었습니다.

 

레스터는 복귀전에서 6이닝 2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면서 건재함을 증명했고 결국 그해 생애 첫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까지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 5월 19일 안방 경기에서 캔자스시티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남겼습니다.

 

이후 레스터는 우리가 아는 존 레스터가 됐습니다.

 

2013년 한 번 더 월드시리즈 정상을 차지한 레스터는 2014년 트레이드 마감일(7월 31일) 오클랜드로 트레이드 되면서 보스턴을 떠납니다.

 

존 레스터와 데이비드 로스. 알링턴=아이콘스포츠와이어

2014 시즌이 끝나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레스터는 시카고 컵스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레스터는 최하위 팀 컵스와 계약하면서 보스턴 시절 전담 포수였던 데이비드 로스(45)와 계약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컵스는 이 요구를 받아들여 나중에 컵스 감독이 되는 로스와 2년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 '영혼의 배터리'는 2016년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마지막으로 호흡을 맞추면서 컵스가 '염소의 저주'를 깨는 데 도움을 주게 됩니다.

 

이에 앞서 그해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한 로스가 기립박수를 받으면서 정규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레스터가 배려한 것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

 

 

결국 레스터는 컵스에서 2020년까지 6년간 뛰면서 77승 44패(승률 .636), 평균자책점 3.64를 기록한 뒤 다시 FA 자격을 얻어 워싱턴으로 향하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레스터가 보스턴에서 남긴 승률도 .636(110승 63패)였고 평균자책점 역시 3.64였습니다.

 

워싱턴에서 3승 5패, 평균자책점 5.02를 기록한 레스터는 7월 30일 세인트루이스로 트레이드 됐고 이 다섯 번째 팀에서 4승 1패, 평균자책점 4.36을 남기고 결국 유니폼을 벗게 됐습니다.

 

레스터는 "경기장을 나서는 팬들이 '저 선수들 최선을 다한 거 맞아?'라고 생각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생각으로 마운드에 올랐다"면서 "나는 항상 최선을 다했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예, 압니다. 그 동안 고마웠습니다. 앞날에 행운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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