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현대 4 vs 삼성 3


두 감독의 지략 싸움에서 김재박 감독님이 승리를 거뒀다. 삼성의 선동열 감독은 7회부터 마무리 오승환을 투입하는 초강수를 뒀지만 결국 오승환은 패전의 멍에를 안고야 말았다. 계속된 대타 작전으로 찬스를 만든 김재박 감독, 그리고 2사 후에도 참을성 있게 기다린 현대 타자들의 승리였다.



그래프에서 보듯이 7회초 공격에서 현대는 권오준에게 아웃 카운트 두 개를 헌납하며 WP .125에 몰려 있었다. 이 경기를 뒤집을 가능성이 12.5%밖에 되지 않던 상황이었다. 김동수가 우전 안타를 날렸을 때에도 WP는 14.4%밖에 되지 않았다. 이때 김재박 감독이 전근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전근표는 이번 시즌 삼성을 상대로 3타수 1안타 볼넷 하나밖에 기록하지 못했지만, 권오준의 투구폼을 감안할 때 좌타자는 확실히 삼성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선 감독은 좌완 오상민을 마운드에 올렸고, 김재박 감독은 즉각 전근표 대신 송지만을 타석에 세웠다. 풀카운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볼넷, 현대의 WP는 .176까지 올랐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었다. 이 순간 선동열 감독은 오승환을 호출했고 김재박 감독 역시 대타 강귀태를 내보냈다. 몸이 덜 풀린 오승환은 강귀태에게 너무 손쉽게 볼넷을 허용했다. 이제 WP역시 .200대를 넘어서 .228이 됐다. 2사 이후 김재박 감독의 용병술과 타자들의 침착함으로 만들어낸 만루 찬스였다.

현대의 다음 타자는 유한준이었다. 변화구에는 약점이 많지만 빠른 공에는 강한 면모를 보이는 바로 그 선수 말이다. 유한준은 서두르지 않았다. 스크라이크 두 개가 연거푸 들어왔지만 계속해서 침착하게 공을 봤다. 침착함 역시 현대 팬들이 유한준을 아끼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파울 하나를 곁들이며 풀카운트에 제 7구 째, 유한준의 방망이에 공이 맞았다. 회전이 많이 먹어 훅이 걸린 타구였다.

삼성의 좌익수 박한이가 다이빙 캐치를 시도했지만 공은 뒤로 빠지고 말았다. 2사에 풀카운트, 당연히 모든 주자들은 재빨리 스타트를 끊었고 모두가 홈으로 들어와 역전일 이뤄냈다.  WP는 .678, 무려 .450의 WP 차이가 발생하는 순간이었다. WP .500은 한 경기의 승리를 뜻한다. 결국 전체 경기의 90%가 이 한방으로 결정된 셈이다. 모두가 뛰어난 집중력을 발휘해 만든 찬스를 신인급 선수인 유한준이 멋지게 살려준 것이다.

삼성 팬이 보기에는 선동열 감독의 투수 기용이 너무도 아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마무리 투수를 7회에 올린 건 확실히 현대 야구의 관점으로 볼 때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은 아니었을까?



Leverage Index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오승환이 마운드에 오른 시점에 경기의 LI는 2.39였다. 물론 중요한 순간이기는 했지만 마무리 투수를 7회에 마운드에 올릴 정도로 중요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강귀태가 볼넷으로 걸어나갔을 때 LI는 4.30으로 치솟았다. 보통 투수 교체는 한 타이밍 빠른 게 좋다고 하지만, 이 경우에는 오히려 한 박자 빠른 게 문제가 된 것이다.

김재박 감독이 박준수를 사용한 건 그 반대다. 4.31의 LI 상황에서 박준수가 마운드에 올랐다. 이후 우익수 플라이 때 주자가 3루로 가면서 6.47의 LI가 됐지만 경기 후반에 맞이한 가장 중요한 순간에 박준수가 마운드에 올랐고 그리고 여전히 마운드 위에는 가장 팀에서 위력적인 불펜 투수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로 상황은 그대로 끝이 났다.

물론 2위팀과의 시리즈 첫경기를 꼭 잡고 가고 싶었던 선동열 감독의 마음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충수가 됐다. 반명 김재박 감독은 관록이란 무엇인가를 확실히 보여주는 승부를 펼쳤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성패가 갈린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만약 오승환이 7회를 틀어막았다면 아마 결과는 전혀 다른 모양새가 됐을 것이다. 이 경기의 여파가 남은 두 경기에서는 어떤 식으로 드러날지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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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WP 그래프를 기다리셨던 분들께 ;

저 그래프는 일일이 노가다로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래프를 그리는 동안 각 선수들에게 WPA값을 부여하게 됩니다. 이렇게 두 달 동안 모아 놓은 파일이 있었는데 실수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매경기 마다 리뷰 형식으로 그리던 그래프 자료가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앞으로도 매경기 그릴 수는 없겠지만, 가능한 자주 그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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