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타석에 들어선 타자의 운명은 크게 두 가지다. 살아서 1루 베이스를 밟거나 아니면 죽거나.

그래서 1루 베이스가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홈런을 쳐도 1루 베이스부터 밟아야 하고, 2사에 3루 주자를 홈으로 들여 보내기 위해서도 1루 베이스에 공보다 먼저 도달해야 한다. 1루 베이스는 타자에게 '살았다'는 희망의 증거다.

1루에 살아나가는 방법은 몇 가지나 될까?

먼저 가장 일반적인 안타와 볼넷, 볼넷 가운데 고의사구를 따로 세면 3가지 방법이 나온다. 몸에 맞는 볼 역시 익숙한 장면. 여기까지는 타자가 '출루율'을 끌어올리며 1루 베이스를 밟는 방법이다. 하지만 1루 베이스를 밟았는데 출루율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먼저 상대 야수들이 도와주는 경우:

대표적인 게 실책이다. 포수 타격 방해도 공식 기록은 실책이지만, 확실히 다른 실책과는 성질이 다르다.

포수가 돕는 방법은 한 가지 더 있다.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 이 또한 공식 기록은 삼진이지만, 타자 주자는 살아서 1루 베이스를 밟는다. 삼진을 당하고도 1루에 살아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

야수가 선행 주자를 죽이려고 한 경우에도 살아서 1루에 나갈 수 있다. 선행 주자가 포스 아웃 되는 사이 재빨리 1루를 밟아도 사는 건 사는 것이고, 선행 주자가 협살에 걸렸다면 2루까지 진출하는 행운도 따를 수 있다. 상대 야수의 판단 미스로 '야수 선택'이 나올 때도 당연히 1루 베이스를 밟을 수 있다.

도움을 주는 건 상대 야수만이 아니다. 심판이 페어 지역으로 날아온 타구에 맞아도 타자 주자는 1루 출루권을 얻는다. 선행 주자가 타구에 몸을 날리는 살신성인(?) 역시 타자 주자를 1루에서 살려준다. 거꾸로 희생에 실패한 번트 타구도 1루에 살아 나가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야수가 주자의 진행을 방해한 경우 역시 타자 주자는 안전하게 1루에 살아 나간다.

여기까지 등장한 14가지 방법은 그래도 '그라운드' 안에서 벌어진 플레이로 1루에서 사는 법이다. 아무런 플레이 없이도 1루 베이스를 밟을 수 있다는 뜻.

투수가 20초 이상 투구를 지체한 경우에는 자동으로 볼이 선언된다. 3볼 상황이라면 역시 타자 주자는 1루 진루권을 얻는다. 보크도 마찬가지. 야수가 타석에 와서 타격을 방해한 경우, 관중 혹은 경기를 지켜보던 관계자들이 타격을 방해했을 때도 타자는 1루로 살아 나간다.

그런데 꼭 타자 주자로 1루에 나갈 필요는 없다. 대주자로 1루에 나가는 것도 1루 베이스를 밟는 방법이다. 주자가 심판에 어필하다 퇴장 당할 때도 덕아웃에서 1루 베이스로 직행할 수 있다.

지금까지 등장한 방법은 모두 21가지. 하지만 제목에서 1루에 살아나가는 방식은 23가지라고 했다. 마지막 두 가지는 무엇일까?

먼저 서스펜디드 게임을 들 수 있다. 어떤 이유로 경기가 중단됐는데 당시 1루에 있던 주자가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 됐다면 새로 재개된 경기에서는 트레이드 된 대신해 새로운 선수가 1루 베이스에 나갈 수 있다.

현재 규칙을 따르자면 이 22가지가 한계다. 그러나 야구 역사에는 이 스물 두 가지가 아닌 방법으로 1루에 도달한 기록이 전해 내려온다. 2루 주자가 도루(?)를 통해 1루로 돌아간 적이 있던 것. 1900년대 초반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데이비드 존스에 따르면 1908년경 저머니 셰퍼라는 선수가 1루로 도루를 시도해 성공한 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현재 야구 규칙에는 2루 주자의 1루 도루를 금지하는 규정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런 내용이 규칙에 포함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1루 도루'가 가능했던 것이다. 생각해 보라. 얼마나 놀라운 광경이었겠는가.

사람들은 출루율이라는 낱말을 들으면 흔히 '볼넷'을 떠올린다. 하지만 '출루'를 하는 방법은 이렇게 다양하다. 또 1루 베이스를 밟는데 성공했다고 해서 언제나 출루율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출루율이 떨어지는 가짓수가 더 많다.

살면서 이 가운데 몇 가지나 실제로 지켜본 경험이 있는가? 이 23가지를 다 보기 전까지는 야구에 대해 '좀 안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건 아닐까?


+
KBO의 투구 제한 시간은 15초다.
참조: http://espn.go.com/magazine/vol4no10answerguy.html


댓글, 4

  •  댓글  수정/삭제 MLB춘
    2007.09.05 23:15 신고

    스물세가지나 되는데도, 참 나가기 힘든 곳..ㅎㅎ

  •  댓글  수정/삭제 rainism
    2012.09.27 13:37 신고

    3년전인가 고교 야구에서 2루주자의 1루 도루(?)가 있었는데요.
    부산고 공격시 주자 1루에서 보내기 번트가 성공하여 1루 주자가 2루로 갔는데, 상대팀 2루수가 '파울이야'라고 얘기한 걸 믿고 다시 1루로 돌아간 경우가 있었습니다.
    상대팀 선수들도 황당했는지 아무도 태그를 안 했고...
    다음 작전을 구상하다가 뒤늦게 1루에 서 있는 주자를 보고서 황망해 했던 표정이 생생하네요.

    참고로 규칙에도 투수가 투구동작에 들어간 이후에는 원래 베이스로 돌아갈 수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부산고의 상황은 투구동작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인플레이 상태였으니 '도루'라고 할 수는 없고... 주자의 재치?

    •  수정/삭제 kini
      2012.09.27 16:07 신고

      물론 이건 이미 1루를 밟았던 거지만
      새로 내용을 하나 추가해야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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