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정성훈의 방망이가 매섭다. 4월을 .204의 타율로 마쳤을 때는 팬들의 아쉬운 소리가 들렸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 현재 정성훈은 .293(12위)까지 타율을 끌어 올렸다. 출루율 .367(17위), 장타율 .463(9위) 역시 시즌 초반의 부진을 감안하자면 상당한 발전을 이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정성훈은 예년의 모습을 뛰어 넘어 생애 최초로 골든글러브를 노릴 수 있는 페이스로 시즌을 이끌어 가고 있다.

사실 정성훈의 야구 인생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정성훈은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99년 KIA의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에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하지만 '02 플레이오프에서 타율 .000으로 안타를 단 하나도 때려내지 못하고 주눅든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결국 '03 시즌이 시작되기 전 박재홍+10억에 현대로 트레이드 됐다. '03 시즌 .343/.397/.509로 쏠쏠한 활약을 펼쳤지만 삼성의 외국인 선수 라이언 글린의 투구에 맞은 이후 부상을 당해 그리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04년에는 병풍에 연루돼 한국 시리즈에서 뛰지 못했고, '05년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인해 동계 훈련에 충실히 참여하지 못했다. 야구천재 이종범의 후계자 가운데 한명으로 손꼽히던 정성훈의 야구 인생은 그렇게 내리막길로 치닫는 듯 보였다.

하지만 WBC에서 김동주가 부상을 당한 게 오히려 정성훈에게는 기회가 됐다. 김동주의 대체 선수로 선발되어 뒤늦게 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었고, 결국 병역면제 혜택을 받는 행운을 잡을 수 있게 됐다. 언제 군입대를 선택할지 몰라 조마하던 팬들에게도 참으로 다행스런 소식이 아닐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에게 있어선 인생 최대의 기회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대박이었다. 하지만 이런 행운 속에서도 4, 5월 연달아 부진하자 말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6월이 시작되면서 그는 전혀 다른 선수가 됐다. 6월 타율 .352, 7월엔 .381, 비록 세 경기밖에 치르지 않았지만 .400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놀라운 타격 페이스를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성훈 혼자서만 이런 고공비행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이범호의 경우 타율(.279)은 정성훈보다 떨어지지만 출루율(.378)과 장타율(.479)은 모두 근소한 차이로 정성훈에 앞서 있다. 다행스러운 건, 투표권이 있는 기자들이 이런 비율 스탯보다 고전적인 누적 스탯에 좀더 가중치를 준다는 점이다. 홈런은 이범호(11개)가 정성훈(10개)보다 1개 더 많이 때려낸 상황이고, 타점은 반대로 정성훈(46점)이 이범호(45점)에 비해 하나 더 많다. 만약 정성훈이 계속해서 타격 페이스를 끌어 올려 .300 이상의 타율을 기록한다면 정성훈이 굳이 뒤질 게 없다는 이야기다. 이범호는 7월 이후 .255의 타율에 머물러 있다.

아직도 시즌은 거의 두 달 가까이 남아 있다. 따라서 정성훈이 지금 같은 페이스를 계속 유지하라는 법도 없고, 이범호 역시 마찬가지로 계속 저조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게다가 홈런을 때려내는 데 있어서는 이범호가 훨씬 유리한 구장에서 뛴다. 홈런이 늘어나면 타점이 늘어나기 수월한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정성훈이 자칫 슬럼프에 빠지기라도 한다면 역시 유리한 건 이범호 쪽이다. 따라서 정성훈에게는 긴장을 늦추지 않는 일 역시 중요하다.

물론 수비 이야기를 하자면 우위를 가르기 곤란하다는 게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시즌 초반 정성훈은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수비를 많이 보여줬다. 평범한 바운드를 막지 못해 결승점을 헌납한다거나, 완벽한 자세로 포구를 한 이후 소위 '라이징 패스트볼'을 던져 실책을 기록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최근 정성훈은 앞뒤 수비에 있어 놀라운 모습을 보일 뿐더러, 핫코너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강한 라인드라이브 타구 역시 여러 차례 캐치해 내는 순발력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범호 역시 3루수로 크게 흠잡을 데 없는 수비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기자들이 수비 실력까지 꼼꼼하게 체크해 가며 상을 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말이다.

결국 한 살 터울의 두 선수 가운데 누가 골든글러브를 차지하느냐 하는 문제는 팀 성적과 밀접한 연관을 맺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현재 성적만으로는 둘 중 누군가 더 확실한 우위를 점쳤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유니콘스는 한화에 1.5 게임차로 뒤진 3위에 머물러 있다. 만약 이 순위가 굳어진다면 아무래도 이범호가 2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정성훈이 골든글러브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팀원들의 도움이 절대적인 영향을 차지할 걸로 보인다. 팀 성적과 골든글러브,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주인공이 정성훈이 되길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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